총력전(總力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 치르는 전쟁. 요즘 미국 상황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할 단어가 있을까.
백신 접종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는 미국이 총력전을 펼치는 부분이 또 있다. 바로 경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미국의 일자리 계획’이 정점이다. 8년간 투입될 돈만 2조2500억 달러(약 2513조 원)에 달한다.
방법은 단순하고 타깃은 명확하다. ‘중국 전기차를 따라잡겠다’며 전기차에 1740억 달러, ‘탄소중립 정책을 펴겠다’며 제철소·시멘트 공장 탄소 저감 지원에 1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식이다. 다 함께 잘사는 나라, 포용적 성장 같은 모호한 구호는 없다. 한국에서 예산 소모성 복지 정책이 된 직업훈련도 미국은 다르다. ‘그린 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기술을 가르치겠다’며 방향을 뚜렷하게 설정했다.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다. 7년간 인프라-에너지 예산만 5400억 유로(약 726조 원), 민관 합동 투자는 10년간 1조 유로다. 2025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자급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여기에 포함됐다.
3300조 원에 가까운 미국, 유럽의 재정 총력전은 기업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올 초 전기차에 3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보급 정책을 내놓은 건 철저한 기업-정부 간 2인3각 전략의 일환이다. 폭스바겐, BMW 등의 배터리 자체 생산 플랜도 단순한 회사 차원의 사업 계획이 아니다. 일자리가 나올 분야를 콕 집어 가용 가능한 최대한의 자금을 투입해 인프라를 재건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전략이다.
한국도 100조 원을 투입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이 있다. 나라 덩치가 다르니 절대 규모를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기업을 지원하려는 정부의 성의와 노력에서 한국이 미국, 유럽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대기업 최고경영진을 불러 회의를 주재했지만 기업 반응은 냉랭하다. “수년간 규제 개선, 인센티브 정책을 요청할 땐 외면하더니 이제 와서 같은 얘기를 또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는 목소리에 정부는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문 대통령은 “기업이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에 나서준다면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순서가 바뀌었다. 정부가 총력을 쏟아 지원해도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이 될까 말까다. 미국을 따라 반도체 연구개발·투자에 40% 세액공제를 해주겠다지만, 불과 10년 전 7% 투자세액공제조차 대기업 부자 감세로 몰아붙여 폐지시킨 게 당시 야당이던 현 정권이다. 반기업 정서, 정부의 외면에 더해 자국 정부를 업은 선진국 기업 공세까지 3중고에 시달리는 한국 기업이다. ‘각자도생으로 잘 버텨 보라’며 무방비로 글로벌 경쟁에 내몰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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