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궤적이 너무나 달랐던 문재인-도널드 트럼프 두 대통령의 정부가 똑같은 방식으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게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지난 몇 년 동안에도 서울과 워싱턴에선 권력이 정치적 상대를 손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건 아니다’라는 내부 논의가 있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내부 고발의 호루라기가 울렸다.
# 내부자 1. 재심 전문으로 잘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4·7 재·보궐선거 직후 1249쪽 분량의 정부 문건을 언론에 제보했다. 이명박 박근혜 검찰이 끼리끼리 봐줬다는 적폐를 뿌리 뽑겠다는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자료였다. 민간 단원이었던 그는 “나를 포함해 조사단원 대부분은 창피할 정도로 무책임했다”고까지 고백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무혐의 과정을 조사한 것이 핵심이었다. 사실과 추정을 뒤섞어 재수사로 결론지었다. “윤석열도 건설업자에게 접대받았다”는 한 신문의 오보도 그 문서대로였다. 박 변호사는 중도 사퇴했고 고발 인터뷰를 이어왔다. 단단한 결기를 드러냈기에 조사단에서 진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폭로한 문건은 정부 문건이다. 훈령 위반에 따른 불이익을 각오한 양심고백이라고 봐야 한다.
# 내부자 2. 알렉산더 빈드먼은 재작년 10월 미국 하원 트럼프 탄핵 청문회장에 섰다. 육군 중령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러시아·우크라이나 국장이었다. 그는 트럼프-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전화 정상외교를 상황실에서 직접 듣고 귀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대통령이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의 아들과 관련한 기업을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사해 달라. 그러면 군사 원조를 주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빈드먼은 즉시 NSC 상관에게 보고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일탈이 실무자 지적으로 바로잡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청문회 영상 속 빈드먼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가볍게 떨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오늘 진실을 말할 겁니다. (대통령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할 것이지만, 제겐 별일 안 생길 겁니다.”
안심시킨 말과 달리 그는 배신자로 공격받았다. 몇 달 뒤엔 백악관도, 군도 떠나야 했다.
오죽했으면 믿고 일을 맡긴 동료 조사단원을 비난하고, 얼마나 황당했기에 미국 대통령을 고발했을까. 그것도 이름과 얼굴을 다 공개하면서.
두 사람의 앞길이 궁금하다. 바라건대, 솔깃한 제안이 있더라도 정치권은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대쪽에선 ‘그럴 줄 알았다’며 고발의 의미를 희석시키려 들 것이고, 미래의 내부 고발자는 좌절할 것이다. 마침 박 변호사는 어제 “사적 목적이 있다면 벼락 맞을 일”이라고 선을 그었고, 빈드먼은 안보학 박사 공부를 시작했다.
권력자들은 무엇을 교훈으로 삼았을까. 입단속이 가능한 우리 편을 더 써야 한다는 철 지난 논리 뒤로 숨을까 두렵다. 정치적 이득이 생긴다면 뭐든 용납되고 비밀까지 잘 지켜지는 조직의 앞날은 물어보나 마나 아닌가.
지시받은 일을 해도 좋을지 판단이 안 서는 공직자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금융위기를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권하고 싶다. 백악관 근무 시절 멘토가 들려준 이야기라며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이 한 말이다.
“뭐든 필요하다면 기획하고 추진하고 보고서를 써라. 단, 그 일이 내일 아침 자 워싱턴포스트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된다고 가정하라. 그래도 자신 있으면 시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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