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갑자기 몰아친 ‘LH 사태’ 속에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부동산 선거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부동산 적폐 청산’을 꺼내 들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춰보는 심정으로 선거를 지켜봤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민주당의 참패였다.
국민의힘 오세훈 시장은 57.5%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 박영선 후보(39.2%)를 18.3%포인트라는 큰 차이로 제쳤다. 선거는 상대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다. 상대 진영 지지층 10%를 가져오면 격차는 20%포인트 벌어진다. 여당 성향으로 분류됐던 2030세대가 야당 쪽으로 돌아서며 무게추가 확 기울었다.
문재인 정부는 204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와 기대 속에 탄생했다. 2017년 5·9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동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20, 30, 40대에서 각각 48.3%, 56.9%, 50.5%의 지지를 받았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의 20대(7.5%) 30대(7.0%) 40대(7.7%),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20대(13.2%) 30대(11.2%) 40대(17.5%)의 2040 지지세를 압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4년 차가 마무리돼 가는 지금 2030의 표심은 반대로 향했다. 지상파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시장은 4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박 후보를 앞섰다. 특히 20대에서 오 시장(55.3%)은 박 후보(34.1%)를 21.2%포인트 차로 앞섰고, 30대에서도 56.5%의 지지를 받아 박 후보(38.7%)를 17.8%포인트 차로 눌렀다. 오 시장(48.3%)과 박 후보(49.3%)가 1.0%포인트의 격차를 보인 40대와 비교하면 2030의 표심은 4년 전과 비교할 때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진보 진영은 청년을 향해 “아프냐, 괴로우냐, 그러면 분노하라. 그리고 투표하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냈다. 이는 정권 교체의 원동력이 됐다. 권위에 적대적인 2030의 표심을 꿰뚫어 본 것이다. 하지만 열화와 같았던 문 대통령을 향한 2030의 지지와 기대는 이제 여권에 아득한 추억일 뿐이다. 오히려 재집권을 꿈꾸는 민주당에 2030은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떠올랐다.
2030의 분노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급격한 정치구도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 1월 반중 성향의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대선에서 압승한 원동력도 2030이었다. 민진당 소속 차이 총통은 201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여론조사 지지율이 30%대에 그쳐 국민당 소속 한궈위 후보에게 크게 뒤졌다. 하지만 힘을 앞세운 중국의 대만 압박에 반발한 2030이 투표장으로 대거 향하면서 6개월 만에 판세가 확 바뀌었다. 2019년 11월 처음으로 반중 성향의 범민주파가 과반을 차지한 홍콩 구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화들짝 놀란 정치권은 앞다퉈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해소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구조적 원인이 깊게 배어 있는 2030의 문제를 1년 안에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년 대선까지 분노의 바람이 속절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선심성 정책이 아닌 그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여권에는 4년 동안 축적된 오만의 이미지와 기득권을 다 내려놓겠다는 각오와 역발상이 필요하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뜬금없이 “피해자님이여!”를 적는 민주당의 공감 능력으로는 2030에게 다가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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