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에서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74)이 어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데뷔한 지 50년 만에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것이다. 아시아 배우로는 1957년 일본 우메키 미요시가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이후 64년 만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윤여정이 이날 수상 소감에서 언급했듯 한국인들에게는 TV에서나 보는 남의 나라 잔치였다. 그런데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4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는 한국 이민 1세대의 신산한 삶을 다룬 ‘미나리’가 작품상을 포함한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한국 영화인들이 축제의 주역이 됐다. 봉 감독과 ‘미나리’의 주연 배우 스티븐 연은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윤여정은 사랑스러운 할머니 연기로 호평받았을 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에서도 당당하고 재치 있는 발언으로 세계인의 호감을 샀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내 이름을 잘못 발음해온 걸 오늘은 용서한다”며 미국인 중심주의를 유쾌하게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언급하며 “각자 배역이 다른데 경쟁할 순 없다.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사려 깊은 수상 소감을 전했다. 평소 “먹고살려고 연기했다”고 말해온 그는 이날도 “일하러 나가란 두 아들 덕분”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며 싱글맘 배우의 소감을 솔직하게 밝혀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해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으면서 아카데미의 백인 중심주의에 균열을 낸 데 이어 올해는 윤여정이 연기상을, 중국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아시아 영화인들의 오스카상 수상이 아시아 증오 범죄가 잇따르는 시기에 이민자들의 노력과 창의성이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임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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