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면 감염자는 또 줄어들겠죠. 이렇게 감염자가 줄면 또 거리 두기 단계를 풀 것이고, 이런 상태를 지속하다가 변종이 출현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최소 2, 3년은 지속되지 않겠어요?”
최근 만나는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 전망에 대해 물어보면 이제 거의 기계적으로 내놓는 답변이다. 최근 외신을 통해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이스라엘 시민들의 모습이 공개됐다. 이스라엘은 전 국민의 60%가 백신 접종을 했다. 미국도 상황이 비슷하다. 심지어 ‘팬데믹 예언자’로 불렸던 빌 게이츠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백신으로 인해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집단면역에 있어 충분한 백신의 도입과 짧은 기간 동안 전 국민 동시접종은 필수 상황이 됐다.
최근 국내에서 백신 수급 불안이 커진 가운데 정부가 화이자 백신 2000만 명분을 추가로 계약했다. 집단면역 실현을 위한 노력의 결과다. 다만 발표대로 백신이 도입돼야 예정된 접종이 가능하다. 그때까지는 또 현재의 거리 두기를 계속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현재 거리 두기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또 1년 넘게 진행된 거리 두기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최근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필자뿐 아니라 방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때 확진자가 급증했던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 코로나19 대책의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렇기에 일시적으로 ‘셧다운’이라는 강력한 방역조치를 선택했고, 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우리의 거리 두기는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비슷한 상태가 ‘유지’되는 어정쩡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확진자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주변에 눈길을 돌려 보면 현재 거리 두기 단계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실제 5명 이상이 모이는 식당이나 회식 장소만 피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다.
서울 지하철 대부분 노선의 출퇴근길은 방역에 있어 최악의 상황이다. 대형마트도 항상 인파가 넘친다. 최근 찾아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은 바로 옆자리에 손님이 붙어 앉아 일행이 적더라도 자연스레 ‘5인 이상 모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집단면역이 도달한 상황이 아닌데도 마스크만 쓴 채 마치 집단면역에 도달한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홍성진 전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은 “사람들이 모여서 밥 먹는 것과 모임을 최소화하는 현재의 거리 두기를 계속 가져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과연 효율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인지 평가를 통해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현 상태의 거리 두기를 통해 불편함을 참아 달라고 강조한다. 올해 11월 말까지 전 국민의 70%가 백신 접종을 해 집단면역을 이뤄 코로나19를 극복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전 국민의 70%’라는 수치에 대해 확신이 가지 않을뿐더러, 그런 상황이 올해 안에 올지도 의문이다. ‘희망 고문’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영국이나 독일, 미국, 이스라엘처럼 코로나19 환자 수가 하루 수만 명씩 생겼다가 갑자기 하루에 100여 명으로 줄었을 땐 집단면역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루 500명 발생하던 환자 수가 100명으로 줄었다면, 과연 그것을 집단면역의 효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는 예방접종 속도도 느리고 그런 상황에서 환자 발생도 적기 때문에 거리 두기 강화에 의한 효과인지, 백신의 효과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한국은 그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 사회적 거리 두기와 추적조사 자료가 많을 것”이라며 “이를 제대로 평가해 어느 곳을 강화해야 할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손실 보상 등은 어떻게 할지 답을 내놔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거리 두기의 목표와 새로운 판단 기준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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