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 전 세계에서 으뜸가는 친중 국가다. 양국은 ‘공동의 적’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이 독립한 1947년 이후 내내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파키스탄은 중국산 무기의 최대 구입국이다. 중국 국영 제약사 시노팜이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도 가장 먼저 받았다. 퓨리서치센터, 유고브 등 서구 유명 여론조사 회사의 조사에서 ‘중국을 좋아한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도 꼽힌다.
이런 파키스탄의 반중 정서가 심상치 않다. 21일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에서 눙룽(農融) 파키스탄 주재 중국대사가 머물던 호텔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4명이 숨졌다. 지난해에는 중국이 지분을 소유한 최대 도시 카라치 증권거래소에서 테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했다. 2018년에도 역시 카라치 중국영사관에서 테러가 발생해 7명이 숨졌다. 당시 발루치스탄 무장단체 발루치스탄해방군(BLA)은 “중국이 우리를 약탈해 테러를 자행했다. 당장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발루치스탄 남부에는 중국의 21세기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요충지인 과다르항이 있다. 중국은 2001년 파키스탄과 과다르항 개발 계약을 맺었다.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파키스탄을 찾아 도로, 철도, 송유관 등을 건설해 신장위구르와 과다르항을 연결하는 CPEC 사업을 공식화했다. 중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원유를 과다르를 거쳐 중국 본토로 곧바로 옮겨 오겠다는 속내였다.
CPEC를 포함한 일대일로는 중국이 저개발국에 차관을 빌려준 후 그 돈으로 도로 항만 통신 인프라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공사 주체가 중국이라는 데 있다. 중국 건설사가 중국 노동자와 자재를 쓰고 새로 생긴 일자리 대부분이 중국에 돌아간다. 공사 대금은 해당 국가가 중국에 진 빚으로 고스란히 쌓인다. 고질적인 경제난으로 1988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2차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파키스탄 국민 입장에서 곱게 보일 리 없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세계 130여 개국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대규모 공사를 진행해봤자 국내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중국 배만 불려주는데 공사를 접자니 이미 중국에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 포기조차 쉽지 않다. 일대일로에 참여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경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스리랑카는 2017년 남부의 전략요충지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겼다. 사실상의 영토 할양이다.
2014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국가 부채의 23%인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를 빌린 동유럽 몬테네그로는 7월까지 이 돈을 갚아야 한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4%를 기록한 터라 갚을 길이 막막하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몬테네그로 역시 스리랑카와 비슷한 길을 밟을 것이며 중국이 몬테네그로 서부 해안에 군사 기지를 건설해 서유럽을 정면으로 노릴 수 있다고 점쳤다.
사태의 1차 원인은 저개발국 권위주의 통치자에게 있다. 서구 선진국 차관과 달리 민주화 인권 반부패 등 까다로운 조건이 없는 중국 돈을 쉽게 보고 덥석 받은 결과다. 그러나 연 8%대의 고도성장이 끝난 후 남아도는 과잉설비를 처리하기 위해 저개발국을 이용했으면서 덕 본 것은 없다는 투로 일관한 중국 역시 대국의 풍모를 보여주진 못했다. 일대일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전 세계 공동 발전이란 취지를 왜곡하고 시기하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농간이란 판에 박힌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진짜 속내는 “일대일로는 채무 함정이 아닌 ‘혜민(惠民)의 떡’”이라는 22일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엄연히 주권을 가진 타국 국민을 중국이 은혜를 베풀고 떡을 나눠줄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중국 아니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불만을 제기하지 말라는 식이다. 이 오만한 발언에서도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며 전 세계 다른 나라는 모두 조공국에 불과하다는 중국의 지독한 중화주의가 엿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