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를 경제만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사실 경제 문제가 아닌 세상일도 드물다. 코로나19 탓에 결혼식 치르기가 어렵다곤 해도 1년 전보다 21.6% 줄어든 2월의 혼인 건수, 5.7% 감소한 출생아 수는 청년 취업난과 전셋값 급등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혼인 건수가 출산율을 예고하듯 결혼을 하려면 연애부터 해야 한다. 연애는 시작 단계에서 높은 ‘초기 비용’이 드는 일이다. 평소 안 다니던 비싼 음식점, 카페를 찾아다녀야 하고 각종 기념일에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은 하강곡선을 그리지만 헤어지는 순간 그동안 쓴 돈은 회수 불가능한 ‘매몰 비용’이 된다.
게다가 비용 분담이 보편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연애 과정에서 ‘경제력’은 남성에게 더 많이 요구되는 경향이 있다. 결혼할 때 주거 문제도 남성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악화된 일자리 상황, 전셋값 상승에 대한 2030 남성의 분노가 동년배 여성보다 큰 이유가 이런 데도 있을 것이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남성은 20대 72.5%, 30대 63.8%로 여성(20대 40.9%, 30대 50.6%)보다 훨씬 높았다.
현 정부 초기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거의 사어(死語)가 됐지만 핵심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지금까지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생산성 증가, 고용주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정부가 ‘노동의 가격’인 임금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면 일자리가 감소한다는 당연한 경제원리를 청년층을 중심으로 온 국민이 큰 대가를 치르며 실감하고 있다.
작년 7월 말 정부 여당이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3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을 때 “이번엔 정말 전셋값이 잡힐 것”이라고 기대한 청년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대가 규제는 폭격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확실한 방법”이란 경제학자들의 경고는 어김없이 적중해 전세난만 가중됐다. 정부가 선진국 모범사례로 제시했던 독일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 역시 주택난 가중 등 부작용만 낳고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의 무효 판정을 받았다.
지난 4년간 한국 경제는 반시장적 비주류 경제학의 실험장이었다. 결과는 처참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선한 의도’를 앞세운 검증되지 않은 정책의 위험성을 국민들이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문재인대(大) 경제학과’에 4년 다닌 효과로 한국인의 ‘경제 지능’이 크게 높아졌다.
문제는 정부 여당의 경제 이해도가 국민 눈높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청와대 부대변인이 “압축하다 보니 생긴 오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신용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란 지난달 말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국민들이 깜짝 놀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로 확인된 국민의 부동산 세금 불만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벌어지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논쟁에서도 경제 사안에 대한 이해력 부족이 드러난다. 여권이 밀어붙인 부동산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해 실현된 소득 없이 보유세를 더 내야 하는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과세 대상을 몇 %로 맞춰야 표에 도움이 될지만 계산하고 있다. ‘보려 하지 않는 이들보다 더 눈먼 사람은 없다’는 영어속담처럼 경제 문제를 경제가 아닌 정치, 이념의 색안경을 통해 보려 한다면 눈앞에 놓인 뻔한 해답조차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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