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동산 중개인들은 어떤 조건을 설명하며 “이런 집을 사겠다”고 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대로 하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사람들이 대체로 거짓말쟁이인 걸까? 아니다. 중개인들이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집을 보여준 다음, “그냥 구경이나 하라”며 언덕 위에 있는 전망 좋은 집을 보여주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집 근처에서부터 눈이 커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넓은 거실 유리창에 쫙 펼쳐지는 탁 트인 전망을 보는 순간 감탄사와 함께 생각을 바꾼다. ‘지름신’이 강림한 듯 ‘영끌’해 그 집을 산다. 그런데 이런 언덕 위의 집도 당해내지 못하는 집이 있다. 강이나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집이다.
우리라고 다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 위에 산다”고 하면 못산다는 말이었다. 달동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달동네에 산다”고 하면 잘산다는 말이 됐다. 이른바 ‘뷰(view)’가 가치를 좌우하는 세상이 된 까닭이다. 일반 아파트에서도 스카이라운지가 인기이고 호텔 꼭대기에 있는 펜트하우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니 탁 트인 한강을 볼 수 있는 곳의 가격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멋진 ‘한강 뷰’를 갖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최고급 아파트는 집 크기가 같은데도 맨 아래층과 최고층의 가격차가 50억 원에 이른다. 세금(보유세) 차이만 1억1000만 원이다. 공시가격을 매긴 한국부동산원에 의하면 가장 영향을 미친 건 한강 조망권이다.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도 9층과 83층의 가격차는 7억 원이 넘는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조망을 중시할까. 우리 안의 오래된 마음이 이런 집을 원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600만 년쯤 되는데 농경 생활은 1만여 년 전에, 문명 생활은 불과 4000∼5000년 전에 시작했다. 600만 년을 1년으로 보면 문명의 혜택을 입기 시작한 게 12월 31일하고도 한참 늦은 오후쯤 된다.
365일 중 364일이 넘는 이 오랜 시간 우리에겐 무엇이 중요했을까? 안전하면서 먹을거리가 많은 곳이었을 것이다. 사방을 모두 방어하기 힘드니 뒤쪽은 산으로 막혀 있는 곳이 좋았을 것이고 앞쪽은 사냥과 채집을 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서 외부의 침입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탁 트인 벌판이 최적이었을 것이다. 강이 흐른다면 더 좋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그러니까 명당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만 이런 게 아니다. 사바나에 사는 케냐인들도 이런 곳을 선호한다. 생태지리학에서 말하는 전망피신 이론이다.
이런 오래된 마음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콘크리트 숲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전망 좋은 집을 찾게 된 것이다.
멋진 곳에 사는 만큼 멀리 보고 넓게 보는 시야와 마음까지 갖춘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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