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기업 한몸돼 미래먹거리 선점 나서고
미중 충돌 속에 미국 중심 밸류체인 구축되는데
한국 대통령은 중국 칭찬하고 백신개발국 비판
지지층 환심, 백신失政 면피를 국익보다 앞세울 건가
수년 전 영화 겨울왕국을 보고 장차 북유럽 여행을 꿈꿨다. 당시 지도에서 봤던 스웨덴 북부 도시 중 하나가 셸레프테오(Skellefteå)였는데 요즘 외신에서 자주 보게 된다.
아(亞)북극성 기후로 겨울이 길고 혹독한 인구 3만여 명의 이 도시에 연내에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이 준공된다고 한다.
공장을 짓는 노스볼트는 전직 테슬라 간부가 2015년 설립한 신생사다. 2019년 유럽개발은행 3억5000만 유로를 비롯해 총 3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스웨덴을 시작으로 독일과 헝가리에도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노스볼트의 급팽창은 전기차 시대 주도권을 미국과 아시아에 뺏기지 않겠다는 유럽 차원 절박감의 산물이다. 장차 EU에서 높은 기준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요구될 텐데 수력이 풍부한 스웨덴에서 친환경 제조공정으로 배터리를 양산해내 블록화하면 한국의 배터리 산업에 막강한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
미국도 GM이 수명을 10배 높인 ‘100만 마일’ 배터리 개발을 코앞에 두고 있고, 영국은 첫 기가팩토리를 구축했다.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같은 미래 산업은 기술·노하우 집약 산업이어서 여럿이 공생하기 힘들다. 각국이 비슷한 출발선에서 스타트하는데 아차 한발 뒤지면 수십 년 먹거리를 뺏기게 된다.
일본도 배터리 관련 55개 기업이 공동 작업에 나서는 등 제조업 초강국 위상 회복을 노리고 있다. 스가 정부는 아예 ‘대만 인계철선’까지 받아들이는 등 미국이라는 큰 우산을 받겠다는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밸류체인에서 한국을 밀어내려는 경쟁 전략도 엿보인다.
이처럼 지구촌은 미중 간에, 그리고 블록 간에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포연이 가득한데 한국의 집권세력은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연신 친중, 반미성 메시지를 발신한다.
문 대통령은 26일 “(코로나 백신 개발국들이) 자국 우선주의와 사재기, 수출 통제 등으로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자기 식구끼리만 앉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국 등 우방국을 비난해서 얻을 이익이 무엇일까.
만약 냉전시대 비동맹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면 제3세계에서 영향력이라도 확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 등 백신 개발국들에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면 뉴욕타임스 회견 같은 자리에서 정색하고 발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행동은 △골방에 모여 힘센 자를 비난하며 자족감을 느끼는 운동권 문화의 잔재며 △열성 지지층을 향한 프로파간다 목적이며 △백신 정책 실패를 선진국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20일 보아오포럼 연설에선 “개발도상국에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코로나 지원 활동을 펴는 중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찬사는 개인의 세계관이든, 북한을 염두에 둔 민원성 아부든 대통령의 선택이다. 하지만 뜬금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실익도 없는 3무(無) 발언이 엄중한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남발되는 건 문제다.
미중 양자택일 상황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이 승자일 수 밖에 없을 이 전쟁에서 미국 중심 가치동맹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밑돌을 까는 노력은 필요하다.
일각에선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지만 우리의 대중 수출은 주종이 반도체다. 핵심 기술이 없는 중국이 우리에게 아쉬워해야 하는 입장이다. 미중 갈등이 우리의 대중 수출에 미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국에 잘 보여야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을 설득하고 신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보아오포럼 연설에서 ‘포용적 다자질서’의 회복을 강조한 것도 국제무역사를 오독한 결과물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다자주의 자유무역질서는 미국이 주로 공급하는 글로벌 공공재를 기반으로 중국 등이 수혜를 받으면서 발전한 구도였다.
그런데 세력을 확장한 중국이 그 기본질서의 혜택은 그대로 누리면서 질서를 어지럽히니까, 미국이 이를 다시 짜겠다고 나선 게 지금의 무역질서 재편 국면이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수출지원금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다자주의 이상(理想)에 배치되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포용적 다자주의 이상론을 편 것은 다시 중국이 서방을 흡혈하는 구조로의 회귀를 원한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1970년대에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발전소로 뒷받침해줬듯이 기업이 무역전쟁에 나설 때 국가는 인프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기의 인프라는 동맹 강화 등 방향을 올바로 설정하고 규제 완화와 제도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휘부가 자해성 메시지를 남발하고 가리키는 방향은 역주행이다.
위정자라면 아무리 실정 면피가 시급하다 해도 대외 관계에 손상을 가져올 발언을 삼가야 한다. 대외 관계 손상은 국민에게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테니, 지지층 환심 사기가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전시(戰時) 총사령관으로서의 자격 미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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