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래 가장 낮은 29%를 기록했다. 역대 정권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30% 선이 무너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정 기조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이렇게 꺾인 추세를 되돌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임기 말을 맞은 5년 단임 대통령의 숙명은 거스를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 정권 임기는 12개월, 대선은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권력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4연승하던 선거에서 첫 제동이 걸렸다. 판세는 좋지 않지만 압도적 조직력으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해볼 만하다는 판단은 착시(錯視)였다. 민심에 담을 쌓고 힘으로 밀어붙인 ‘완력 정치’가 자초한 참사였다.
한 정권의 명운은 그 정권의 핵심 정책 성과에 좌우되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 정권이 딱히 내세울 만한 공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부동산과 코로나19 백신 대책 등 수렁에 빠진 것만 눈에 띈다. 여당의 재·보선 참패를 현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로 보는 이유다.
이러니 여권은 조급한 표정이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엔 더 민감하게 대응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을 겨냥해 “백신 정치를 말라”고 받아쳤지만 정작 백신 논란을 자초한 것은 백신 수급에 늑장 대응한 현 정권 아니었나. 진솔한 사과는 제쳐두고 명확한 일정도 내놓지 못한 채 무조건 “자신 있다”는 희망고문으로 민심을 달랠 순 없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생각, 청심(靑心)과 당심(黨心)이 갈리는 지점도 여기다. 생각이 다르니 처방도 다르다. 청와대는 정권의 안정적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대통령 퇴임 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리해서라도 정책성과 홍보에 나서고, 차기 검찰총장 인선 기준으로 대놓고 ‘대통령의 국정철학’ 운운하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퇴임 후 정권의 안위와 관련한 문제라면 쉽게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의 사정은 다를 것이다. 강경 친문 세력이 당을 장악하긴 했어도 재·보선에서 확인된 민심을 더 이상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다. 당장 대선을 앞둔 처지에서 더 절박하다. 중도파 의원들이 강경 친문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을 문제 삼자 친문 의원들은 “야당의 분열 전략”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부동산 세제 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동안 눌러왔던 당내 갈등이 표면화할 조짐이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이 갈등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특히 여권 대선주자 선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체적으로 해외 백신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러자 정부는 즉각 “자체 도입 불가”라고 쐐기를 박았다. 친문 주류와 이 지사 측의 해묵은 앙금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 지사가 정권과의 차별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2007년 대선 당시 여권의 정동영 캠프는 노무현 청와대와 선을 긋는 차별화를 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친문 주류 진영이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실패라고 강변하는 이유다. 그러나 당시 대선에서 차별화를 유일한 패인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극심해서 정권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급락했다. 시중엔 야당에서 누구를 내세워도 이겼을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할 정도였다.
대선은 미래 권력에 대한 전망 투표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해도 여권 후보는 현재 권력에 대한 민심 성적표를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여권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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