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0대 남성을 모욕죄로 고소했다가 취소했다. 이 남성은 2019년 “북조선의 개, 한국 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일본 잡지의 문구를 담은 전단을 뿌려 기소 직전까지 갔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 풀리면 좋은 일”이라 해놓고 일반인을 모욕죄로 고소한 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지만 모욕죄에 대해 ‘전 국민이 학습’하고 개선책을 찾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은 긍정적이다.
모욕죄 논쟁은 이명박 정부 시절 더 뜨거웠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국가정보원의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정부의 명예훼손 소송이 잇따르던 때다. 민변과 참여연대를 포함한 25개 시민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를 구성해 국내외 판례를 비교 분석한 뒤 ‘국가기관은 명예에 관한 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형법상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개정을 요구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변호사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쓴 논문들에 나온다.
대통령에 대한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형법에 따르면 표현이 모욕적이라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 조 교수는 “노가리(노무현), 쥐박이(이명박) 등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경멸은 일상화돼 있으므로 사회상규성이 인정된다”며 “고위 공직자에겐 모욕당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했다.
모욕죄는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외부적 명예의 손상 여부로 판단한다. 박 의원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보호받는 불평등의 문제가 생긴다며 “고위 공직자가 모욕죄를 남용해 약자가 권력에 반대할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가 국민의 언어생활에 개입하는 것은 자유주의 국가의 이상과는 먼 것”이라며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을 인용했다. “국민은 공인과 정책을 비판할 특권을 지닌다. 여기엔 박식하고 책임 있는 비판뿐만 아니라 절제되지 않은 무식한 비판도 포함된다.”
결론은 모욕죄를 폐지하든가, 아니면 최소한 공직자나 정치인의 모욕죄 혹은 명예훼손죄 소송은 제한하자는 것이다. 최강욱 김의겸 등 열린민주당 의원 3명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7명은 지난달 8일 모욕죄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당시 야당 의원 32명도 모욕죄 폐지 법안을 냈다. 명예훼손죄에 대해선 진성준 박영선 등 10명이 야당 의원 시절이던 2015년 “정부의 업무 수행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며 공공 기관의 명예훼손 소송을 금지하는 법안을 낸 것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에 안이했다’며 아쉬워했던 사람들이다. 이제 174석 거대 여당이 됐으니 숙원을 이루길 바란다.
문 대통령에게는 철학자들의 조언을 전한다.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에 따르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욕은 분노로 이어지고 분노는 어리석고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모욕에 대처하는 방안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욕하는 사람의 말이 옳은지 생각한다. 옳다면 그건 욕이 아니라 진실이다. 둘째, 욕한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생각한다. 존경받는 인물이라면 그의 욕은 경청해야 하고, 비열한 사람이면 난 모욕당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모욕당한 나를 들여다본다. ‘나를 모욕하는 것은 날 욕한 사람이 아니라 그걸 욕이라 판단한 내 생각이다.’(에픽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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