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지를 위해 도쿄 오사카 등 4개 지역을 중심으로 세 번째 긴급 사태를 발령한 후 미생물 감염학 전문의인 가미 마사히로(上昌廣·52) ‘일본 의료거버넌스 연구소’ 이사장이 한 말이다. 그는 기자에게 “(긴급 사태) 선언을 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예측은 맞았다. 최장 일주일을 쉴 수 있는 ‘골든위크’가 겹치며 상당수의 일본인들은 ‘스테이 홈(Stay home)’ 대신 ‘고 아웃사이드(Go outside)’를 선택했다. 시부야 등 도쿄 중심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바현에서는 1만 명 규모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렸고, 미에현의 유명 관광지 ‘이세진구(伊勢神宮)’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방문객이 15배 늘었다. 지난해 첫 번째 긴급 사태 당시 한산했던 연휴 분위기와 정반대 상황이다.
밤은 ‘시한폭탄’ 같다. 식당 영업이 오후 8시까지로 제한됐지만 도쿄 우에노, 아사쿠사 등 유명 유흥가 골목은 밤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다.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시는 수십 명의 손님들 앞에 너덧 명의 단속원들은 무기력한 듯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시민은 “대체 똑같은 (긴급 사태) 선언을 몇 번이나 하나. 신뢰감이 사라졌다”고 했다. 한 술집 사장은 “영업 제한을 따르는 것보다 벌금을 내고 그냥 영업을 하는 편이 더 낫다”고 했다.
경제계도 반기를 들었다. 휴업 대상이 된 백화점 업계는 협회 차원에서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을 찾아가 조치 철회를 요청했다. 협회의 한 간부는 “사전 준비 기간 없이 단 며칠 만에 통보를 받아 당황스럽다”고 했다.
정부 방침에 비교적 순응하던 일본인들이 세 번째 긴급 사태가 선언되자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는) 1년간 무엇을 했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답을 내렸다. 1년간 세 번의 긴급 사태 선언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 의료계가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국민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때부터 제기된 의료 붕괴 위기, 백신 접종 지연 등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 등 비상사태에 대응하지 못한 국가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 일본 정부 소식통은 “방역 대책은 안 따라주는데 도쿄 올림픽 개최 의지는 확고하니 마치 ‘억지 주장’을 하는 모습이 됐다”고 했다. 국민 방역보다 도쿄 올림픽 관련 일정을 우선시해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세우는 ‘도쿄 올림픽 시프트’라는 말도 나왔다. 도쿄 올림픽 성화 봉송식(3월 25일) 직전인 3월 21일에 두 번째 긴급 사태 선언이 해제됐고, 세 번째 긴급 사태 해제 예정일(5월 11일) 직후에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일본 방문이 예정돼 있다.
일본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6000명 가까이로 치솟은 가운데 6일 NHK 등 언론은 정부가 당초 11일 종료 예정이었던 세 번째 긴급 사태를 연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도 스가 총리는 “긴급 사태 선언과 도쿄 올림픽 개최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말 안 듣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는 이유를 스가 내각만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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