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다른 모습이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중
가정폭력 전담 검사의 주된 업무는 사건 당사자들과 직접 면담하는 것이다. 폭력이 일어나게 된 경위, 지금의 심정, 부부의 경우 혼인 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있는지도 물어본다. 그 면담은 자연스레 부부 상담, 가족 상담이 되어버리곤 한다.
상습 폭력범에 의한 일부 사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가정폭력 사건은 보통 사람들이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일어나는 일들이다. 서로 휴대전화를 빼앗으려다 실랑이를 한다거나 분에 못 이겨 벽을 주먹으로 쾅 친다거나…. “많이 힘드셨죠.” 생전 처음 받아본 조사에 잔뜩 겁먹고 있던 사람들은 곪은 상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간 쌓여온 아픔을 왈칵 토해낸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한 가정보육 스트레스와 경제적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8개월 쌍둥이 보느라 밖에 못 나가요.” 부부 상담을 받아보라는 권유에 어린 새댁이 지친 목소리로 답한다. “죽고 싶습니다.” 해고당한 걸 숨기고 매일 출근하는 시늉을 하다가 들켜서 부부싸움을 했다는 여행사 사원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어느 집이고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다.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제각각인 그 가정들에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불화를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다.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애정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50대 남성은 상담을 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났다. 알코올의존증 증세를 인정하지 않던 70대 할머니는 손자의 간절한 부탁에 수치심을 무릅쓰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 결과가 때로는 성공이고, 때로는 그렇지 못하지만 그들의 노력만큼은 누구도 비난하지 못하리라.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여러분의, 우리의 가정에 가끔은 평화로운 날들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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