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음악, 그 행복한 조화의 순간[클래식의 품격/나성인의 같이 들으실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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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아르침볼도 ‘봄’, 1573년.
주세페 아르침볼도 ‘봄’, 1573년.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람의 얼굴에다 그렸다. 모두가 바깥 환경을 묘사할 때, 자연이 인간의 내면에도 깃든다는 단순한 진실을 재치 있게 포착해낸 것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인간은 자연을 소재 삼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줄 안다. 이처럼 예술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짓는 감수성과 상상력의 보고였다.

봄과 오월은 피어난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 때문이 아니라 본래 그러한 것이다. 그러한 피어나는 기운을 음악가들은 악상에 담고자 했다. 비발디는 ‘사계’의 ‘봄’을 왜 그렇게 작곡하였을까. 약동하는 충만함을 담아내기 위해 따뜻한 삼화음을 가득 울린다. 상승하는 기운을 표현하기 위해 선율은 완만하게 도약시킨다. 그러나 그 도약은 화려하거나 인위적인 느낌이 없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정중동의 온화함. 그것이 비발디가 떠올린 ‘봄’의 첫인상이다.

멘델스존의 ‘무언가’에도 ‘봄노래’(작품번호 62-6)가 있다. 누구나 기억할 만한 상냥한 이 작은 선율에서도 가볍게 위로 뛰어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위를 향하는 기운이 싱싱하나 여린 것이 봄의 느낌과 똑 통한다. 선율은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반주는 앙증맞은 움직임으로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게 강해서는 안 된다. 여리고 부드러운 느낌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금세 봄이 아니라 ‘여름’이 되어 버릴 테니 말이다.

아, 그런 까닭에 봄을 그리려는 음악은 봄다운 균형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때의 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죽은 듯한 겨울을 뚫고 나와 왕성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얻어지는 변화의 산물이다. 모든 것이 생동하며 움직이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누르지 않는 조화의 상태, 그것이 봄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슈만의 교향곡 1번 ‘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 등 봄을 느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은 셀 수 없이 많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라는 매혹적인 왈츠도 있다. 이런 작품들에는 예외 없이 음계를 타고 위쪽으로 상승하는 움직임과 온화한 화성이 들어 있다. 또한 이 작품들은 예외 없이 강렬해지는 유혹, 자기과시의 유혹, 다시 말해 여름이 되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켜내고 있다. 봄이 진정 봄이 될 수 있으려면 저절로 찾아온 이 순간의 행복한 균형 상태를 복되게, 욕심 없이 누려야 하는 것이다.

봄을 봄답게 누릴 기회가 점점 귀해지고 있다. 봄이 사라지면 봄다운 예술도 소용없는 일이 된다. 아르침볼도가 사람 얼굴에 그려놓은 저 흐드러진 꽃들은 무얼 말할까. 인간이여, 그대 안에도 봄이 있었다. 그 봄을 여름으로 만들지 말자. 그때 그대 안에서 인간다움이 피어날 것이다.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봄의 음악#이탈리아#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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