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의료계 리베이트의 민낯[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4일 03시 00분


최근 약사의 병의원 지원비가 논란이 되자 이와 관련해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약사회의 성명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최근 약사의 병의원 지원비가 논란이 되자 이와 관련해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약사회의 성명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리베이트’ 관련 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이렇다.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약사의 의사 지원비 및 리베이트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게시물에 담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약국 위층에 있던 병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약국도 함께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런데 병원 원장의 친척인 건물주가 약국에 반환할 전세보증금 중 7000만 원을 병원장에게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명목은 ‘이전 지원금’이었다. 약사가 거부하자 원장은 앞으로 해당 약국 쪽으로 갈 처방전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글을 올린 청원인은 병원과 건물주 담합에 따른 지원금 문제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일부 병원과 약국 사이의 이른바 리베이트 논란은 사실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그만큼 쉽게 근절되지 않는 문제다. 약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개국 관련 게시판을 살펴봤다. ‘지원금’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새 건물에 병원과 약국이 함께 입점하는 경우 지원금 요구가 있었다는 내용이 많다. 어떤 약국의 경우 ‘중개업자’로부터 지원금 미지급 시 △병원 처방 의약품 목록을 제공하지 않고 △환자를 다른 약국에 보내도록 유도하고 △수시로 의약품 목록을 바꿀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며 고소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까지 병원의 의견이 반영됐는지 모르지만 약국 입장에선 제3자를 통해 그런 말을 들어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원금이 전달되면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보통 병원 인테리어나 의료기기 구입에 쓰인다고 한다. 1층에 특정 약국이 자리할 경우 같은 건물에 개원하는 병원에 지원해줘야 한다는 명목이다. 병원 인테리어 비용 1억8000만 원을 요구받거나 의료기기 구입비로 1억 원을 요구받았다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잘못된 관행을 끊고 싶어도 약사 입장에선 쉽지가 않다. 일종의 갑을 관계인 탓이다. 무엇보다 한 번이라도 지원금을 줬다면 신고자도 처벌을 받기 때문에 어디에 속 시원하게 알리는 것도 쉽지 않다. 실제 지원금을 주고 문을 연 약국 중에는 병원 측의 상습적인 폐업 등으로 금전적 피해를 보고 소송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병원 지원금 자체가 불법인 탓에 소송을 통해 돌려받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은 지원금 논란은 의약분업 시작 후 일부 현장에서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다. 약사와 의사 간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 오래된 관습이라 근절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요즘 약대 졸업자 증가로 점점 약국 운영이 치열해지면서 중개업자들이 이를 악용해 지원금을 부추기기도 한다. 의료기관과 약국의 균형적 견제를 통해 의약품의 적정 사용을 유도하고, 나아가 국민 건강에 기여하라는 의약분업의 기본 원칙이 병원 지원금이라는 병폐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김위학 대한약사회 정책이사는 “병원 지원금을 주고받는 사람 모두를 처벌하는 현행 쌍벌죄로는 근본적 적폐 청산이 어렵다. 자진신고자에 대한 처벌 경감과 이 문제를 조장하는 알선 중개업자에 대해 중한 처벌이 담긴 법 개정도 함께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에선 갑을 관계를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으로 동일 성분 조제 활성화 및 성분명 처방 제도 도입 그리고 현재 사문화된 ‘지역 처방 목록’(해당 지역 병원들의 의약품 처방 목록) 제출 의무화 등 균형 회복을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물론 지원금을 통해 의료기관 유치나 약국 독점 혜택을 보는 약사도 있지 않냐는 지적도 많다. 이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불법적인 관습이 당연한 것으로 고착화하면 결국 불법적 거래나 담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의약분업 이후 20년 가까이 이런 ‘부당 거래’가 여전히 이뤄지는 것을 보면 같은 의료인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의료계#리베이트#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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