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4년을 넘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는 을씨년스러웠다. 당시 출입하던 기자들은 청와대를 종종 ‘절간’으로 표현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단 송년 만찬에서 “칭송받는 대통령은 물 건너간 것이 됐다. 역사적 평가를 받는 대통령으로 넘겨졌다”고 탄식했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은 취임 4주년 직후인 2007년 2월 29일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해 2월 무렵 16%까지 떨어졌다(한국갤럽 기준). 차기 대선을 앞두고 당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가기가 부담스러웠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탈당계를 제출한 노 전 대통령은 당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떠난다 생각하니 너무 섭섭하여 ‘탈당’이라는 말 대신 굳이 ‘당적정리’라는 말을 써봅니다. … 임기가 끝난 뒤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전직 대통령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일으킨 당에서 나가야 하는 격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당사에 걸려 있던 10개에 가까운 노 전 대통령 사진들을 철거했다.
당시 탈당계를 들고 여의도 당사를 찾은 대통령정무팀장이 현재 친문 진영의 정태호 의원이다. 탈당계를 접수한 사무총장은 지금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송영길 의원. 그리고 그해 3월부터 레임덕 속에서 마지막 1년을 보내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참모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레임덕에 빠진 무기력한 대통령의 참혹한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셈이다.
10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유심히 지켜봤다. 많은 현장 사진들 속에서 연단에 오르기 직전, 커튼 뒤에 대기하고 있던 문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그의 표정이 비장했다. 전 국민 앞에 서기 직전, 마지막 1년에 대한 각오를 스스로 다지는 순간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특별연설을 눈앞에 둔 4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9%로 나타났다. 3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었다. 이 여파로 대통령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보다 낮은 ‘당청 지지율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임기 말 당청 지지율 역전이 고착화되는 시점을 레임덕 징후 중 하나로 본다.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지면 당은 대통령 탓을 하기 시작하고, 여권의 자중지란이 일어난다.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노 전 대통령도 그랬다.
4·7 재·보선 패배에서 확인한 분노한 민심에, 당청 지지율 역전까지. 청와대 입장에선 죽비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개각 과정에서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를 포기했다.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한 후보자에 대해 낙마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기 말 당청은 과거와 같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십 관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당의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모든 평가는 국민과 역사에 맡기고, 마지막까지 헌신하겠다”고 했다. 역사의 심판만 기다려야 하는 무기력한 1년이 될지, 헌신할 수 있는 1년이 될지, 모든 것은 문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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