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올림픽을 둘러싼 상황은 신화 속의 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옛 동양 신화 속에 등장하는 눈 없는 날개 달린 존재 ‘제강(帝江)’이다. 중국 신화집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제강은 네 개의 날개와 여섯 개의 다리를 가졌다. 빠르게 날 수 있고 달릴 수 있음을 암시하지만 눈이 없다. 이 존재가 상징하는 것은 혼돈이다.
올림픽을 둘러싼 현재의 상황은 혼란스럽다. 7월 23일 개막 예정인 도쿄 올림픽이 2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본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일본과 세계 곳곳에서 올림픽 재연기 또는 취소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막대한 예산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쉽게 취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취소와 강행론이 맞서면서 타협점으로 제시된 것이 제한된 관중 혹은 무관중 경기다.
그렇다면 제한된 관중 혹은 무관중 올림픽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어떤 형태로든지 올림픽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올림픽 현장에서 관중을 배제하는 것은 올림픽이 추구하는 이념의 상징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고대 올림픽이 신에 대한 경배를 통해 인류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하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면 근대 올림픽은 평화 추구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의 의지를 앞세웠다고 볼 수 있다. 신의 뜻을 기다리기에 앞서 평화를 위한 인간의 적극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현장으로서, 그 증거 및 상징으로서, 세계에서 모인 관중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올림픽 경기장은 이들이 연대와 화합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으로 여겨졌다. 한데 모여 정열의 분출을 함께 경험하고 서로를 축제의 일원으로 인정함으로써 하나의 인류임을 확인하자는 취지가 담겼다. 여기서 추구하는 ‘함께함’ 또한 올림픽의 핵심 가치다.
올해 재선에 성공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전통적인 올림픽 구호 ‘더 높이, 더 빨리, 더 힘차게’에 덧붙여 ‘다 함께’를 새 구호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데 모인 관중은 그 ‘다 함께’의 상징이었지만 이제 그 상징 없이 올림픽을 치르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관중이 현장을 찾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TV를 통해 올림픽을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또 무관중 경기가 이번 올림픽에 한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관중 배제는, 올림픽 이념의 핵심 상징이 제거됨으로써 그동안 가속화해 온 올림픽의 위기감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 관중 이탈 우려를 낳고 있는 올림픽의 미래를 생각해 보게 한다.
현장 관중이 감소되는 올림픽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IOC가 택한 전략은 미디어 스타 만들기이다. 스타 스토리를 발굴해 미디어 시청률을 높이고 이익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IOC는 3월 총회에서 이 같은 정책 방침을 공식 채택했다.
이념이 제거되거나 약화된 상태에서의 스타 만들기는 개인의 상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남는 것은 결국 극대화되는 인기 경쟁이다. 이는 개인 간은 물론이고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 간 차이를 심화시킨다. 올림픽이 인기만을 추구할 때 월드컵 등 프로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다른 대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다. 또 올림픽을 지탱해 온 크나큰 명분이 없다면 또 누가 그토록 거액을 들여 올림픽을 개최하려 하겠는가. 올림픽 이념의 약화는 올림픽 자체의 위기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현실은 어둡다. 이 와중에 일본은 올림픽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논란의 식자재를 사용하거나 욱일기 등을 국제경기장에서 사용해 공인받으려 함으로써 올림픽을 자국의 정치적 이익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를 묵인하는 IOC도 함께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순수함을 의심받고 있는 올림픽 이념을 훼손하는 부가적인 요소들일 뿐이다. 도쿄 올림픽의 위기는 코로나19로 촉발돼 진행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인류애와 화합 추구라는 올림픽 이념의 훼손과도 맞닿아 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 구호는 그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눈을 감은 채 시도하는 도약은 추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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