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평원 ‘유령청사’ 예산 집행… 구멍가게만도 못한 행정 수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0일 00시 00분


비어 있는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의 세종시 신청사 전경. 뉴스1
비어 있는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의 세종시 신청사 전경. 뉴스1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이 법을 어기고 세종시에 신청사를 지었다가 승인을 받지 못해 171억 원 들여 지은 건물이 1년 넘게 ‘유령청사’로 남아 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직원 49명은 세종시에서 아파트 특별공급을 받아 수억 원씩 시세 차익까지 얻었다.

관평원 세종청사는 원래 지어져선 안 되는 건물이었다. 2005년 행정안전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 이전 대상에서 관평원은 제외한다고 고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대전세관에 있던 관평원 직원 수가 많다는 이유로 관세청은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6년 관세청은 기획재정부에 청사 신축 예산심의를 요청했고 그해 말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에 대해 관세청과 관평원은 “대상에서 빠진 줄 모르고 추진했다”고 한다. 예산을 내준 기재부도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고 발뺌하고 있다. 행안부 역시 “당시엔 고시를 어긴 걸 몰랐다”고 한다. 대한민국 행정부의 업무처리 수준이 구멍가게에도 못 미친다는 뜻인데 국민들로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2016년 말 최서원(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태 등 정국 혼란을 틈타 공무원들이 아파트 특공 등의 혜택을 누리려고 이전을 추진했을 것이란 의심이 커지는 것이다.

2018년 뒤늦게 위법을 확인한 행안부가 제동을 걸었는데 관세청이 ‘고시 변경’을 요청하며 계속 공사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일했던 김영문 당시 관세청장의 영향력이 아니었으면 쓰지도 못할 청사가 완공되진 않았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그제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수사의뢰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국민 공분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령청사’를 짓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부당이득을 챙겼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5년 이상 여러 부처가 지켜보는 가운데 법을 어겨가며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도 반드시 규명돼야 할 것이다.
#관평원#유령청사#예산 집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