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의 100세 건강]“실직의 아픔 달래준 달리기… 잔병까지 싹 없애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0일 03시 00분


성덕제 씨가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 출렁다리를 달리고 있다. 대기업을 다니던 그는 2017년 당한 명예퇴직의 아픔을 달리기로 달랬고 건강을 지키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예산=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성덕제 씨가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 출렁다리를 달리고 있다. 대기업을 다니던 그는 2017년 당한 명예퇴직의 아픔을 달리기로 달랬고 건강을 지키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예산=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양종구 논설위원
양종구 논설위원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던 성덕제 씨(59)는 2017년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하게 됐다. 해당 기업과 관련된 글로벌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1988년 입사해 30년간 다녔던 회사였다.

“매일 나가던 회사를 가지 않으니 갈 데가 없었어요. 참 절망적이었죠.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던 일상이 퇴직하면서 태엽이 풀려 멈춰버린 괘종시계 같았습니다. 며칠간 고민을 했죠.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무렵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달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어요. 10km 달리려다 20km 달리고, 20km 달리려다 30km를 달리고…. 그때 제게 유일한 희망이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했고 회사를 다니면서 축구와 수영 등을 즐겼다.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는 사람들’이란 울산의 마라톤동호회 회장이 후배였는데 함께 만나 운동을 하다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엔 운동장 10바퀴를 도는데 50대 여성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자존심이 좀 상했다. 그래도 축구할 때마다 선수로 뛰었었는데…. 혼자 열심히 달렸다. 한 3개월 달리니 따라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건강을 위해서 달린 것이라 대회 출전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리산 천왕봉,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9봉을 달리는 등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에도 빠져들었다. 지인 3, 4명과 함께 2, 3일씩 산을 달렸다. 그는 2019년 한 해에만 3200km를 달렸다. 하루 평균 10km에 가깝다. 올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언택트로 열린 대회에 출전해 처음 풀코스를 달렸다. 언택트 마라톤대회는 거리와 시간을 측정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고 혼자 달린 뒤 대회 홈페이지에 올리는 코로나19 시대의 마라톤 레이스다. 기록은 3시간59분16초.

달리면서 잔병이 사라졌다. 70kg까지 갔던 체중도 60kg으로 줄었다. 과거 좀 힘든 일을 하면 피곤했는데 지금은 어떤 일을 해도 거뜬하다. 채식 위주 식이요법을 병행한 그는 올 3월 건강검진에서 혈관 건강지수가 실제 나이보다 23세 젊게 나왔다. 그는 “달리기는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 사람의 나이는 매년 먹는 나이가 있고, 뼈와 심장, 근육, 혈관 등의 나이가 있다. 매년 먹는 나이 외에는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젊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직한 뒤 한 대기업의 하청회사에 취업해 현장 노동일을 하기도 했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요양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기업 하청회사는 경기 불황으로 하청을 받지 못해 그만뒀고, 요양병원은 기획실장으로 들어갔다가 원장과의 운영 방식 갈등 탓에 나왔다. 하지만 뭐든 자신 있게 도전하고 있다. 지금은 고향인 충남 예산군의 예당저수지 인근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새벽 예당저수지 주변을 10∼15km 달리며 성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성 씨의 사연을 들은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매일 자신이 정한 거리와 시간에 달리기를 완주하면서 작은 성공 경험을 쌓은 게 현실 삶으로 긍정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직은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았지만 달리기는 자기 맘대로 통제하면서 자신감을 축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달리기에서 얻는 성취감이 계속 이어지면 삶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전이된다. 한 스포츠를 즐기면서 자기관리는 물론이고 대인관리, 사회생활에서도 자신감을 찾아 새로운 영역에서도 잘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왔을 때 국내에서는 마라톤 붐이 일었다. 실직의 아픔을 ‘인간 승리’의 드라마인 마라톤을 통해서 극복하는 사람들이 넘쳤다. 참고 견디고 달리면서 건강도 챙기고 새롭게 도전해 위기를 이겨낸 스토리가 가득했다.

성 씨는 “코로나19로 실직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해야 일도 할 수 있다. 어떤 운동이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달리며 실직의 아픔을 달랬고, 새로운 삶도 개척하고 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실직#아픔#잔병#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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