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든 다르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산에 나무를 심을 때 사람들은 대개 나무만 심는다. 그런데 이에 그치지 않고 곳곳에 횃대까지 설치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들이 앉을 수 있게끔 말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뭔가를 아는 사람들이다. 횃대를 설치하면 나무들이 잘 자라 숲을 빨리 이룬다. 똑같은 나무를 똑같이 심었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날까? 횃대가 있으면 새들이 와서 앉게 되고 그러면 배설물이 아래로 떨어진다. 나무나 풀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름이다. 비싼 인건비 들여 일일이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니 더 많은 새들이 오게 되고 그럴수록 더 잘 자라는 선순환이 생겨난다. 사소하게 보이는 횃대가 숲을 만들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서 작동하는 역학관계를 알면 약간의 수고로 무궁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일이나 행동이 어떻게 파급되고, 효과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지 아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있는 짐바브웨는 한참 전 급격하게 줄어가는 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면 사냥금지라는 강경책을 쓴 적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자를 죽이면 처벌받도록 했다. 생태계 보존 차원에서 필요하기도 했지만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관광 수입이 타격을 받을 수 있어 내린 조치였다. 그런데 이 조치가 내려진 후 사자는 더 줄었다. 왜 그랬을까?
사자 사냥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을 때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사자를 보호했다. 가끔 돈 많은 서구인들이 큰돈을 내고 사냥을 하게 되면 그 일을 거들면서 자신들도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이 전면 금지되자 돈 한 푼 쥘 수 없었다.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사자들을 보호하겠는가? 더구나 배고픈 사자들이 가끔씩 소중한 가축들을 잡아먹기도 하는데 말이다. 몰래 사냥하는 밀렵이 성행했고 사자들이 가축이라도 건드리면 곧바로 보복했다. 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처벌을 외칠수록 사자의 숫자는 더 줄어들었다.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사정을 이해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현상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현 정부가 시장의 부동산 심리를 쉽게 보고 정책을 쏟아냈다가 역효과를 낸 것처럼 말이다. 의도가 좋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이 만든 영화 ‘적벽대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제갈량과 주유 연합군의 바람을 이용한 화공 작전에 백만 대군을 잃은 조조가 “고작 바람 때문에 패했군”이라고 하자 주유가 하는 말이다. “넌 자연의 이치를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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