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햇살의 계절이 다가온다. 마음은 즐거웠던 옛 휴가의 기억을 따라 들썩이고, 아파트 단지에 크게 자라난 나무들이 아침나절마다 신선한 향기를 뿜어낼 것이다. 그러나 잠깐, 긴 장마와 녹록지 않은 습기가 우리를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끈끈함이나 더위로 잠 못 드는 밤이라곤 없을, 가장 태양이 사랑스러운 날들이다.
초여름이면 약속처럼 떠오르는 선율들이 있다. 프랑스의 프렌치 리비에라 해안과 프로방스 지역을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던, 젊고 짧았던 유월들이 있었다. 영화 ‘마농의 샘’이나 ‘마르셀의 여름’에 나오는 듯한, 햇살을 받아 새하얀 산과 널찍이 보랏빛으로 펼쳐진 라벤더 밭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런 풍경과 함께 먼저 떠올린 명곡은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이다. 마을 사람들의 험담 때문에 상처 입은 주인공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지만, 그 선율과 관현악의 색채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다. 내가 생전 경험한 가장 강렬한 햇살과 그림자도 바로 아를에서 본 것이었다.
비제는 파리음악원 재학 시절인 열일곱 살 때 첫 번째 교향곡을 썼다. 이 곡은 비제가 죽고 나서 60년이 가까워서야 발견됐다. 10대 천재가 쓴 곡다운 신선함이 악보의 모든 페이지에 풋풋한 향내로 숨쉰다. 파리에서 자란 비제가 청소년기에 프로방스에 머무른 일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남프랑스의 쨍한 햇살과 향기로운 바람을 떠올리게 된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신선한 들판의 향내를 맡는 듯한 1악장이 지나면, 오보에가 실연한 목동의 노래를 아련히 부르는 듯한 2악장이 기다린다.
이제 시선을 더 서쪽으로 돌려 스페인으로 가본다. 카르멘의 입술과도 같은, 플라멩코 무용가들의 의상 같은 새빨간 정열이 타오르는 곳이다. 젊은 날 한때의 치기에 휩싸여 끄적였던 습작 문집을 새삼 꺼내본다.
‘동지여/햇살이 뜨거운 날/에스파냐의 질주하는 소 떼를 만나러 가자//한 놈과 나의 눈빛이 부딪치고/그렁그렁 그 망막에 비치어/섬광이 된 태양/그 간절함을 대기에 태워버리자’
나폴레옹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아프리카’라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가면 자연 풍광부터 모로코나 알제리 같은 북아프리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건조한 황톳빛 대지와 선인장들, 그리고 선명하게 빛나는 태양이 반길 것이다. 역시 프랑스 작곡가인 샤브리에의 교향시 ‘에스파냐’를 들어본다.
이제 초여름 따가운 태양에도 익숙해졌다 싶으면 꿈속에서 문득문득 바다가 부른다. 그리고 서늘한 아침 공기가 새삼 반가워진다.
라벨의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부 서두에는 여름 아침 달콤한 공기와 함께 날이 밝고, 새소리가 들리면 해가 떠오르는 장려한 장면이 등장한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그리스 어딘가의 해변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도 이내 달아오르고, 솜사탕처럼 키 큰 뭉게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헤엄쳐 다닌다. 마을 전체가 그늘졌다가, 다시 환하게 밝아지기를 거듭한다. 그런 오후, 창문을 열어 놓으면 레이스 달린 속커튼이 하늘거리고, 창밖에서 향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며 사람을 덧없는 몽상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런 시간엔 역시 라벨의 작품인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이 어울린다.
여름은 밤이 가장 달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깊은 밤, 베네치아 운하 사이로 가면을 쓴 사람이 토닥토닥 신발 소리를 내면서 뛰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일까. 옆 나라에서 온 스파이일까. 나도 다급하게 그의 뒤를 따라간다. 골목이 복잡해서 놓쳤다 싶던 순간, 다시 골목을 돌아가는 그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접어든 곳은 막다른 골목. 더는 갈 곳이 없어진 그가 가면을 벗는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3세기 전 베네치아의 작곡가이자 신부였던 안토니오 비발디!
모든 것은 밤을 무대로 한 꿈이었을 뿐이다.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 ‘밤’ 마지막 악장과 함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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