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사무실에서 우편물을 뜯다 빵 터졌다. 발신인님의 거룩한 오타에 하루치 피로가 순간 삭제됐다. 기분 좋은 모음 ‘ㅏ’에 받침으로 ‘ㅇ’까지 깔리면 언제나 울림이 최고다. 아리랑도 그러하다. 더욱이 답답한 하루라면 기자보다 기장이 짱 아닌가.
오타 사연은 좀 더 있다. ‘임희윤 기사님’이 가장 흔하다. 좋은 뉴스를 잘 포장해 배달하라는 호령이니 새겨둔다. 평기자인 내게 가끔 ‘임희윤 차장님’ ‘임희윤 팀장’ 하는 우편물도 온다.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래도 기장님보다 나를 더 붕 뜨게 해준 오타는 딱 하나뿐이다. 10여 년 전 받은 ‘임희윤 음악부장님께’다. 기자 초년병 신세에 부장이라니…. 게다가 종합일간지에 음악부 같은 건 있지도 않다. 누가 볼세라 공용책상에서 낚아챘지만 ‘음악부장님께’에 한동안 마음이 갔다. ‘그래, 어쩌면 나는 이 세계의 음악(클래식 빼고)을 포괄하는, 알고 보면 제법 중요한 존재일지도 몰라.’ 등세모근이 뻐근해졌다.
#1. 신문사에서 대중음악 담당 기자는 ‘가요기자’로 불린다. 실제 맡는 분야로 보면 가요는 빙산의 일각이다. 트로트, 아이돌,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블루스, 재즈, 크로스오버 뮤직, 해외 팝(이 안엔 다시 앞에 나열한 세부 장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등 실로 방대하다. 그래도 그냥 가요기자다. 글자 수의 경제학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재즈 피아니스트 박진영을 소개하고 래퍼 이센스를 인터뷰한 내 기사를 보며 누군가는 ‘가요기자가 왜 가요는 안 다루고…’ 하는 시선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2.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게 있다. ‘가요기자’처럼 경제적인 설명이 필요할 때 ‘한국의 그래미’라 불린다. 그래미어워즈처럼 장르를 세분해 팝, 록, 메탈, R&B, 힙합, 일렉트로닉, 재즈 등에 여러 트로피를 준다. 비판도 있었다. 명색이 ‘대중’음악상인데 왜 종종 그리 안 대중적인 음악에 상을 주냐는 거다. 그러나 명칭에 있는 대중음악은 ‘대중(적)’음악이 아니라 비(非)클래식을 통칭하는 대분류로서의 ‘대중음악’일 뿐이다.
#3. 2021년을 달리는 ‘가요기자’로서 최대 장점은 독자들 모두가 ‘슈퍼리치’라는 것이다. 패션·명품 기자라면 수백, 수천만 원짜리 가방, IT 기자라면 백만 원짜리 휴대전화, 출판 기자라면 수만 원짜리 책들을 독자에게 권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노래는 거의 공짜니까 말이다.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1억 개의 싱싱한 노래를 언제나 들을 수 있는 70억 명의 독자가 있다! 노래를 명품으로 환산하면 독자마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손에 쥐고 계신 셈이다. 언제든 휴대전화만 켜면 1초 만에 5대양 6대주에서 난 진귀한 음악 상품을 소비하고 버릴 수 있는 셈이다.
#4. 그래서 행복하냐고 하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새로운 음악가, 신선한 명작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볼 일이 줄어 서운하다.
대중음악의 넓은 스펙트럼과 높은 가치를 오랫동안 존중한 영미권 미디어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미국 공영방송 NPR는 전 세계의 펄떡대는 대중음악가(씽씽, 고래야, 방탄소년단 포함)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2008년∼)를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그 기반에는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 ‘올 송스 컨시더드’(2000년∼)가 있다. 옮기면 ‘다 들어보니’다. 매주 세계에서 나오는 신선한 음악을 귀신같이 엄선해 소개한다. 뉴욕타임스의 신보 리뷰와 연간 대중음악 베스트 리스트도 부럽다. 내가 영국 ‘가디언’지의 앱에 알림 설정을 켜게 된 이유는 딱 하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즈 신보만 소개하는 옹고집 재즈 칼럼니스트 존 포덤 선배(라고 불러도 되죠?) 때문이다.
#5. 좋은 작품의 탄생은 가장 좋은 문화 뉴스다. 뛰어난 소설이 나왔을 때, 숨은 참종교인을 알게 될 때, 괜찮은 전시가 열릴 때 기자들은 펜이나 카메라를 들어 기록해야 한다. 기자의 펜이 조용필과 나훈아에서 멈췄다면 누군가는 조동익 정미조의 바람 같은 노래를 모른 채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6. 신문에서, TV에서, 라디오에서 새로운 음악에 대한 소식을 더 많이 읽고 듣고 보고 싶다. 실은 ‘임희윤 음악부장님’부터 닥치고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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