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쓰는 사람, 모으는 사람[관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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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함께 작업하는 동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는 약속 시간을 좀 더 앞당길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혹시 급한 일이 생겼다면 약속을 미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아니라, 나눌 얘기가 더 많을 것 같아 시간을 저금하고 싶어서요.”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을 그는 ‘시간 저금’이라고 말했다. 나의 시간을 배려하면서도 의미 있게 여겨주는 마음이 고맙고 근사했다. 그런 한편 따끔했다. 나는 시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더라.

언제부턴가 ‘시간이 너무 없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지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했다. 행여나 시간을 헛되이 쓰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시간의 효율적인 쓸모와 가치를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에게 써야 할 시간을 계산하면서 머릿속으로 기울어진 관계의 시소를 그리곤 했다.

어쩌면 삶이 바쁘고 초조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그래서였을까. 시간이란 써버리는 것, 가버리는 것,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불안했던 걸까. 한 번쯤, 시간이란 모으는 것, 누리는 것, 간직하는 것이라고 바꿔 생각해 봤다면 어땠을까. 동료의 메시지에 자세를 바로 고쳤다. 잊어버리기 전에 노트에 메모해 두었다. ‘시간을 모으는 사람이 될 것.’

오랜만에 지인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이 만남을 위해 각자의 바쁜 일들을 해내고 달려온 터였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즐겁게만 보내자”고 누군가 말했다. 음식과 대화를 나누며 긴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긴 산책을 했다. 날씨가 좋았다. 따뜻한 물속을 걷는 듯 느릿느릿 볕을 쬐며 거닐다가 담벼락에 가득 핀 장미를 발견했다. 우리는 장미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이토록 존재감이 선명한 꽃이 또 있을까. 오월의 장미는 온전하게 아름다웠다.

문득, 매 순간 온전한 장미처럼 현재를 충실하게 살지 않는다면 행복해질 수도 강인해질 수도 없다고 했던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 있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시간을 모으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에 충실한 이 시간, 훗날 삶이 궂은 날에 꺼내 본다면 장미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오늘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 있다.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시간을 ‘쓴다’는 마음가짐과 시간을 ‘모은다’는 마음가짐은 다르다. 하루를, 삶을, 관계를, 그리고 나를 다르게 바꿀 것이다. 마음의 매무시를 다잡는다. 시간을 모으는 사람 될 것. 오늘을 충실하게 살겠다는 다짐이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시간#부족#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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