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에서 괄목상대할 30대들
정치권 이준석 돌풍도 그런 예
586세대가 드리운 긴 그늘
30대가 헤치고 나와야 미래 있다
김슬아 마켓컬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38세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약간 체격이 있다. 자신이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먹고 싶어 신선식품에 특화된 e커머스 업체 마켓컬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민족사관고에 1년간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웰즐리대에 입학해 정치학을 전공한 후 골드만삭스 등에서 일하다 창업했다.
한국에서는 과거 유학을 가도 주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갔다. 그렇게 공부하고 와서 교수가 된 친구들이 하는 말인즉 같은 한국인이라도 고등학교나 대학 학부 과정부터 다닌 학생과 대학원 과정부터 다닌 학생은 쓰는 영어부터 다르다고 한다. 그 사회에 스며들어 교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네이버의 이해진, 넥슨의 김정주,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등 50대인 정보기술(IT) 분야 선두 기업의 창업자들은 대부분 유학을 가지 않았다. 서울대나 KAIST를 다녔다. 미국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한 적도 없다. 다음의 이재웅이 특이하게 프랑스의 이공계 그랑제콜을 다녔다. 정치인이 된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정도가 뒤늦게 미국에서 MBA를 했다.
한화 3세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도 올해 38세다. 영어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다. 그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영어 소통에 불편이 없으니 다보스포럼 같은 국제 모임에도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 그가 주도한 차세대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외국 CEO들과의 개인적 교류를 통해 얻은 정보에 기초한 것이 많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등 50대인 재벌가 자제들은 대개 국내에서 대학을 마친 뒤 ‘황제교육’ 차원에서 유학을 갔다. 김 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반 외국 학생들과 섞여 지내서인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면이 거의 없다. 공군 통역장교로 3년 근무해 일반인 이상으로 병역 의무를 충실히 마쳤고 결혼도 회사 동료와 해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내가 올 들어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서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두 30대 기업가다. 괄목상대(刮目相對)할 30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올해 36세다. 40세가 안 돼 아직 대통령 피선거권도 없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치권, 특히 여권은 586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586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산(國産)이고 그것도 ‘운동’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한 세대인 반면 이 전 위원은 서울과학고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이런 경력이면 대개 금융계나 IT 업계에서 활동하는데 그는 26세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따지고 보면 26세에 전업 정치인이 돼 보겠다고 한 것 역시 창업 못지않은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586세대는 평준화 체제에서 교육받고 기껏해야 읽는 영어로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세대인 반면 30대는 수월성 교육을 받고 말하고 듣는 영어로 세계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 세대다. 50대는 30대보다 경험치가 20년가량 많다. 그 경험치의 한계효율을 뛰어넘을 만한 실력의 축적이 30대들에게 이뤄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40대는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존재감이 희미하다. 586세대 정치인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정도인 반면 40대 정치인은 많지도 않은 데다 있는 정치인들도 586세대 정치인의 아류 같은 느낌이다. 586세대 IT 기업가들은 개발시대의 재벌에 필적할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거대기업군을 만들었다. 그들이 대학생이던 시절 IT 시대가 시작돼 그 업계를 선점해버린 탓도 있겠지만 40대에는 그만한 기업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30대가 40대와는 달리 586세대가 드리운 긴 그늘을 헤치고 나와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젊다고 무조건 박수칠 일은 아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젊음은 미숙함일 뿐이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그만큼 사회에 유해한 것도 없다. 전(前) 세대의 고루한 통념에 도전하되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도 함께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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