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수 제44대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검찰과의 관계가 최악이었고, 국론 분열도 극심했던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총장이다. 그는 당장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그의 임기는 대통령선거와 정권 이양 등 민감한 정치적 국면과도 겹친다. 그에게 정치적 중립과 공정이 강하게 요구되는 이유이다. 아쉽게도 그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가 공정한 인사와 수사로 상처 입은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고, 훼손된 정치적 중립의 가치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검찰에 불어올 외풍을 막아내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국민과 검찰 구성원들은 우려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검찰의 핵심 가치와 직역을 수호해야 할 검찰의 수장으로서 김 총장이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임박한 ‘검찰 고위직 인사’와 법무부의 ‘검찰 조직개편안’이다. 이 둘은 검찰을 대표하여 총장이 직접 법무부 장관이나 청와대를 상대로 조율하고 담판 지을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향후 총장의 역할이나 리더십에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검찰 고위직 인사는 이 정권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까지는 인사 요인이 없고, 선거 뒤 인사는 차기 정권의 몫이다. 마지막 인사이기에, 정권은 인사를 통해 검찰개혁 완성의 명분도 얻고, 검찰을 순치하여 임기 후의 위험을 없애는 실리도 챙기려 할 것이다. 이례적으로 조기에 인사위를 소집하여 ‘개혁에 대한 수용 자세’를 인사 기준으로 삼고, ‘탄력적 인사’를 하겠다며 바람을 잡고 있다. 장관도 ‘고위직 인사 적체 해소, 대규모 인사’를 거론하며 판을 키우려 하고 있다. 탄력적 인사란 지검장과 고검장의 구분을 없애 고검장을 지검장 자리에 앉히는 역진(逆進)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의 인사 방침은, 친정권의 말 잘 듣는 검사들을 우대하여 요직에 발탁하고, 그간 말 안 들었던 고검장들은 강등 인사로 모욕을 주어 스스로 옷을 벗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작 인사의 기준이 되어야 할 정치적 중립성이나 공정성, 인품, 능력, 실적이라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공정하지 못하며, 품격도 실력도 없는 검찰로 전락할까 걱정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결과 검찰청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검찰청법은 검사의 수사 대상을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및 대형 참사)로 한정하고 있다. 살인, 성폭력, 사기 등 나머지 범죄는 경찰의 수사 영역이 되었다.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상 6대 범죄에 해당하면 형사부의 어떤 검사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조직개편안은 6대 범죄에 대한 검사의 수사권을 대통령령으로 제한하려고 한다. 예컨대,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30여 개 부 중 2개를, 나머지 지검의 경우 1개를 수사부(搜査部)로 지정하고, 수사부에 속한 검사에게만 6대 범죄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사부 검사가 수사에 착수하려면 또다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한다. 수사에 대한 이중 삼중의 제한은 현장 검사들에게 수사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전달될 것이다. 검찰 수사는 위축되고, 수사 현장을 통한 경험과 지식의 전수는 단절되며, 곧 검찰 수사의 명맥도 끊어질 것이다. 이는 개별 검사의 수사권 제한을 통해 전체 검찰의 수사권 박탈로 나아가는 수순이 될 것이다.
수사란 범죄를 진압하여 사회를 방위하는 것이므로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수사의 총량을 규제하거나 수사 권한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규제나 조정 전에 범죄 현상과 수사기관의 역량에 대한 사실적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증권범죄가 줄어들어 검찰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폐지되었는가? 검경 수사권 조정의 범죄사회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검찰개혁이란 정치구호가 요란했을 뿐 범죄 현상이나 검경의 조직 역량에 대한 분석 자료는 어디에도 없었다. 전문 분야에서 수십 년간 현장 경험을 쌓아온 검찰의 부패범죄 수사 역량은 귀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늘어나는 증권금융 경제범죄, 국가 기강을 해치는 공직자 뇌물범죄,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물어뜨리는 선거범죄 등을 효율적으로 진압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검사들의 수사가 필요하다. 범죄는 점점 지능화, 고도화하고 국민의 기대 수준은 높아지는데 법무부가 나서서 검찰의 손발을 묶으려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무부가 범죄자의 편에 서려고 하는 것인가?
법무부의 인사 방침은 공정하지 못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무너뜨릴 위험이 크다. 조직개편안도 검사의 수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위법하고 부당할 뿐 아니라 범죄 진압이라는 국가 이익이나 국민 편의에도 반한다. 김 총장의 어깨가 무겁다.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 태도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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