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발생한 기록적인 냉해로 프랑스 포도 농장들이 초토화됐다. 농민들은 포도 새싹이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밤새 횃불을 들고 나무 사이사이에 불을 지폈지만 소용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곳은 내가 단골로 드나드는 동네 내추럴 와인숍이다. 이곳의 운영자는 에우엔 르무아뉴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사튀른의 수석 소믈리에로 일했다.
사튀른은 독특한 와인 리스트로 유명한데 쥐라, 랑그도크루시용, 루아르 지역의 내추럴 와인이 대접을 받는 곳이었다. 여기에 국내 대기업 회장님을 모시고 갔었는데 와인에 일가견이 있던 회장님이 왜 이런 ‘요상한 와인’만 있는 곳에 자신을 데려왔냐고 역정을 내다가 소믈리에가 추천한 와인 한 잔에 “재미있는 맛”이라며 금세 표정이 환해졌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에서 내추럴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1990년 와인 과학자이자 보졸레 와인 생산자였던 쥘 쇼베의 내추럴 와인 운동이 도화선이 됐다. 농약으로 토양을 해치는 현대농업 기술을 벗어나 과거로 돌아가야 하며, 박테리아나 미생물 감염을 막기 위해 와인 제조에 사용하는 이산화황과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효모 사용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채소든 과일이든 ‘내추럴’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일단 비싸지듯 내추럴 와인 가격 역시 보통 와인보다는 비싸다. 프랑스 슈퍼마켓에서 일반 와인 평균 가격이 4.6유로라면 내추럴 와인 평균값은 이보다 2유로가량 높다는 통계가 있다. 르무아뉴의 가게에 놓인 유명 내추럴 와인을 곁눈질해도 30∼40유로부터 100유로를 훨씬 넘는 것도 있다. 5년 전쯤 운 좋게도 내추럴 와인계의 전설로 불리는 피에르 오베르누아의 와인을 브뤼셀과 프랑스 남부에서 맛보고 35유로에 1병을 샀는데, 그 와인은 현재 1000유로를 주고도 살 수 없으니 세계 5대 와인 부럽지 않은 귀한 몸이 된 셈이다.
아무리 인기 있다 해도 사람들과 내추럴 와인을 함께 마시자고 하기엔 고민부터 앞선다.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내추럴 와인의 맛을 두고 쿰쿰한 양말 고린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특한 흙냄새가 난다고 하는 이도 있다. 소믈리에들은 내추럴 와인은 대중이 요구하는 다양성을 갖추고 있으며 코로나19로 건강에 민감해진 시기에 적합한 와인이라고 한다. 감각적인 디자인의 라벨과 일반 와인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독특한 향과 맛,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내추럴 와인의 핵심은 생산자들의 자부심에서 시작된다. 자연에 가까운 와인을 만드는 데 몇 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고집스러운 방식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인기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소비자들의 유행 심리를 틈타 대충 만들어 비싼 가격에 팔아 보려는 와인도 나올 것이고, 적은 생산량과 일부 컬렉터의 사재기로 가격이 폭등한다는 염려도 없지 않다. 익숙한 와인을 집어들 것인지, 와인의 신세계에 과감히 발을 담글 것인지, 선택은 언제나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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