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지방 붉은 귤나무, 겨울 지나도 여전히 푸른 숲을 이루네. 어찌 이곳 기후가 따뜻해서랴, 스스로 추위 견디는 본성이 있어서지. 귀한 손님께 드릴 수 있으련만 어쩌랴, 첩첩이 길 막히고 아득히 먼 것을. 운명은 그저 만나기 나름이려니 돌고 도는 세상 이치를 억지로 좇을 순 없지. 괜히들 복숭아나 자두를 심으라지만 이 나무라고 어찌 시원한 그늘 없으랴.
강남의 귤나무가 겨울을 겪고도 푸름을 간직하는 건 따스한 기후 때문이 아니라 추위를 이기는 강인한 성질이 있어서이다. 붉은 그 열매 또한 귀한 손님을 접대할 수 있을 만큼 값지다. 하지만 그걸 귀한 분에게 보내려 해도 산 첩첩 물 겹겹 험난한 앞길에 가로막혀 속수무책이다. 붉은 귤이 제대로 쓰임새를 인정받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자기 운명에 달려 있다. 이는 무한히 돌고 도는 자연의 이치와 같아서 억지를 부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귤나무가 추위를 견디는 강인함을 내면에 간직하듯 시인은 묵묵히 세상사의 순리를 따르면서 충절을 지키리라 다짐하고 있다.
이 시는 당 현종 시기 명재상 반열에 올랐던 장구령이 조정에서 밀려나 강남땅으로 좌천되었을 때 지은 작품. 시인은 현종과의 사이가 ‘첩첩이 막히고 아득히 멀어진’ 처지임을 감내하며 이 상황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붉은 귤처럼 귀한 분을 향한 붉은 마음을 오롯이 간직한 채. 한데 세상 사람들이여, 외양이 화려한 복숭아나 자두나무에만 너무 집착하지 마시라. 맛과 향기와 함께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역할이라면 귤나무 역시 하등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