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행사와 전시, 상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지금 이 도시가 사랑에 빠진 것 중 하나가 정원이란 생각이 든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는 타일 전문업체 윤현상재가 식물 치유 브랜드 슬로우파마씨와 함께 선보인 정원이 기획관의 숨구멍 역할을 했고 남산 피크닉에서는 ‘정원 만들기 가드닝’ 전시가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미국의 타샤 할머니처럼 한국에도 인생을 바쳐 정원을 가꾼 할머니가 많다는 것을 최근 TV를 보며 알았다.
집에 딸린 한 뼘 정원(정원이랄 것도 없는 작은 공간이지만)을 포함해 여러 채널을 통해 직간접으로 정원을 경험하다 보니 이 크고 작은 꽃밭이 무척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뜻 봄의 화사함과 여름의 무성함만 떠올리지만 가을의 고독과 겨울의 죽음도 순리처럼 따라붙는다. 누군가 정원을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꽃이 진 자리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포함해 다수의 정원 에세이를 내고 흙 만지는 일을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는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심정에도 정원의 가을과 겨울의 시간이 녹아 있다. 생로병사가 함께하고, 채움과 비움이 공존하고, 들여다본 만큼 건강한 얼굴을 보여주고, 행복이기도 했다가 선생이기도 했다가 그저 무위(無爲)이기도 한 것. 정원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것은 심오하면서도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개인적으로도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지난해 작은 집을 지어 이사를 오면서 한 뼘 정원이 생겼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정원이라 한껏 욕심을 부려 평소 좋아하던 백일홍과 산당화, 라일락 두 그루를 심었다. 주변으로는 장미와 남천도 가져다 두었다. 그렇게 정원을 빽빽하게 채워 놓고 작년 한 해 잠시 기뻤는데 올해는 영 별로다. 산당화와 라일락 가지가 뒤엉켜 지나다니기가 불편하고 가지를 높이 뻗어 올린 장미 밑에 캠핑 의자를 두고 앉으려니 가지에서 혹 송충이가 떨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돼 마음이 편치 않다. 정원과 조경의 고수들이 왜 채우기보다 비우는 것에 더 중점을 두는지 알겠다. 김용택 조경가의 말에도 수긍이 간다. “정원을 만들 때 중요한 건 욕심을 안 내는 일이에요. 어떤 곳에 가면 나무를 너무 빡빡하게 심어 놔 답답해요. 사계절을 생각해 조경을 해 달라는 분도 많은데 나무 한 그루만 심어도 사계절은 다 볼 수 있어요. 잎이 올라오고, 무성해지고, 떨어지고, 앙상해지는 모습이 사계절인 거잖아요.” 정원에도, 인생에도 ‘공백’이 필요하구나.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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