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좋던 2013년 9월 영국 런던 도심에서 주차 중인 자동차가 녹아내렸다. 고무나 플라스틱 재질에선 타는 냄새가 났다. 원인은 신축 중인 빌딩에서 반사된 태양 빛이었다. 다음 날부터 주민들이 프라이팬과 날계란을 들고 모였다. 반사광으로 만든 계란프라이로 빛 피해 시위를 한 셈이다.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된 워키토키빌딩 얘기다. 당시 건축주는 급히 외벽에 그물을 둘렀지만 현지 언론의 ‘올해 최악의 건물’ 선정을 피하지는 못했다.
▷국내에서도 빛 피해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은 이달 3일 경기 성남시 분당 정자동 네이버 본사 인근 주민들이 네이버를 상대로 제기한 ‘태양 반사광 손해배상 및 방지청구’ 소송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네이버에 책임이 없다는 원심을 깬 것. 재판부는 “빛이 유입되는 강도 시기 기간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따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빛의 차단 여부만 따지는 일조권 침해 기준으로 반사광 피해를 판단한 2심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유사 소송이 줄을 잇게 됐다.
▷재판부는 “아파트에 유입되는 빛은 시각장애를 일으키는 기준치의 440배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기준치는 m²당 2만5000cd(칸델라·양초 1개 밝기)이다. 실내에 양초 수천만 개의 빛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대법원은 올 3월에도 부산 해운대아이파크 아파트에서 반사된 빛 피해에 대해 시공사가 인근 주민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인근 아파트에서 측정된 반사광은 기준치의 2800배에 달했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껴야 할 정도다.
▷건축가들은 “국내 건축주들은 유리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말한다. 통유리 건물을 유독 선호한다는 뜻인데, 보기에 시원하고 깔끔한 게 사실이다. 사옥이라면 개방적이고 투명한 기업 이미지도 줄 수 있다. 하지만 여름철 냉방비가 많이 들고 겨울에는 열손실이 크다. 게다가 고층 건물이라면 일조권 침해와 빛 반사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일조권은 법으로 규정돼 설계에 반영되지만 빛 반사에 대한 규정은 없다.
▷네이버 사옥은 빛의 내부 유입량을 조절하는 ‘루버’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외부로 반사하는 빛은 고려하지 않았다. 법원 판결로 외벽에 루버를 설치하거나 필름을 입혀야 할 상황이다. 런던 워키토키빌딩의 반사광은 건축주 수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임대료가 비싼 고층부를 넓히려고 가분수 모양으로 짓다 보니 건물 외벽이 오목해져 거대한 렌즈가 됐다. 두 곳 모두 건물을 짓는 입장에만 집중해 외부 피해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건물이 밀집된 곳에서는 안쪽 못지않게 바깥도 살피라는 게 대법원 판결의 의미일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