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을 깊은 사유로 바꿔놓는 사람들이 있다. 덴마크 영화감독 리스베트 선희 엥겔스토프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덴마크 양부모 밑에서 자란 한국인 입양아다. 그가 어머니를 찾으려고 한국에 왔을 때 어떤 미혼모가 물었다. “입양아로 사는 게 행복한가요?” 가혹하고 무례한 질문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죽을 것 같은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이를 입양시키려고 하는 미혼모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그를 머뭇거리게 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그럼요.” 아이를 떠나보내는 미혼모를 배려한 답변이었다.
열아홉 살에 자신을 낳아 해외로 보낸 엄마도 그 미혼모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보내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는 한국인 미혼모들, 아니 엄마의 마음을 더 알고 싶었다. 그가 ‘엄마에게 쓰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다큐멘터리 영화 ‘날 잊지 말아요(포겟 미 낫)’를 만든 이유다. 그는 미혼모 시설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면서 아이를 쉽게 단념하는 엄마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사회가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부터 용납하지 않았다.
감독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갓 낳은 딸을 해외로 입양시키도록 강요한 것은 결국 한국 사회였다. 2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해외로 보낸 것도 한국 사회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에 비춰 보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게 한국 사회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었던 엄마가 더 보고 싶었다. 그는 엄마가 봐주기를 바라며 영화를 찍고 이렇게 말했다. “원망하지 않으니 엄마도 자신을 원망하지 마세요. 사랑해요, 영원히.” 자신을 만나주지도 않으려는 엄마를 향한 감독, 아니 딸의 깊고 따뜻한 마음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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