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부 장관이 어제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모 중사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매우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 중사가 사망한 지 18일 만이다. 서 장관은 2일 빈소를 찾았을 때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국방 행정의 책임자로서 국민에게 공식 사과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타를 앞두고 인사말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이 중사의 사망과 관련해 드러나고 있는 군의 회유·은폐·축소 의혹은 한심한 수준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이렇게 후진적인 부분이 남아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서 장관은 이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날 단순 사망으로 보고받았고, 사흘 뒤 성추행 사건 피해자임을 추가로 보고받고 나서야 엄중 수사를 지시했다. 이는 최초 성추행이 발생한 지 84일 만이었다니 군 수뇌부가 성폭력 대처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준다.
이후 처리도 매끄럽지 못했다. 장관은 당초 공군에 수사를 맡겼다가 국방부로 수사 주체를 바꾸는 혼선을 불러왔다. 부실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공군 검찰에 대한 압수수색은 어제에야 이뤄졌다. 아직도 군이 소극적이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이제야 군 지휘체계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단순 성추행이 아니라 성폭력 대응 시스템의 치명적인 오류이자 중대한 결함으로 군은 여겨야 한다. 보고와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혀내야 재발도 막을 수 있다.
서 장관은 국방부 장관과 민간위원장이 공동 위원장을 맡는 민·관·군 합동기구 설치를 재발방지책으로 내놨다. 성폭력, 인권, 조직문화 등의 개선책을 민간과 함께 찾아가겠다는 취지다. 앞서 군은 여러 차례 병영문화 개선을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2014년 선임들의 가혹행위와 폭행으로 숨진 윤모 일병 사건 이후 ‘군 인권 보호관’ 제도 도입이 권고됐지만 군이 장기 과제로 돌리며 유야무야됐다. 눈앞의 위기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부실한 대처가 또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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