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도로변에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를 덮치는 참사가 그제 오후 발생했다.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어이없는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장을 보고 귀가하던 중년 여성과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던 늦둥이 고교생 등 무고한 시민들의 일상이 산산조각 났다. 뒤따라오던 차들이 급제동하지 않았으면 피해가 더 컸을 것이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수사 중이지만 총체적 안전관리 실패로 인한 인재(人災)일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먼저 도로변 코앞에 있는 5층 건물을 해체하면서 도로 통제는커녕 천으로 만든 가림막만 설치해 놓았다. 철거업체는 영세 업체에 재하청을 줬고, 해체 계획서엔 철거 공사의 기본인 지지대 설치 계획도 빠져 있었다. 현장에선 부실한 계획서마저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철거 작업이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철거 과정 전반을 감독할 감리자도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무너진 건물은 일정 규모 이상이어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감리업체를 지정해야 한다. 2019년 서울 잠원동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의 외벽이 무너져 차를 타고 지나가던 예비신부가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후 ‘셀프 감리’를 막기 위해 관련 법이 제정됐다. 법적으로 감리자의 현장 상주 의무가 없다고는 하나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철거업체의 재도급과 철거 작업의 불법 여부는 물론, 해당 지자체의 건물 해체 허가 및 감리 지정과 운영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시내버스 승강장은 14개 노선이 정차하는 곳이다. 그런 승강장에 맞붙은 곳에서 건물 철거 작업을 하는데 승강장을 임시로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도로 통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도로 안전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광주시가 시민 보호의 책임을 다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건물 철거 과정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제도 개선이 뒤따르지만 사고는 되풀이되고 있다. 건물 철거 관행과 제도 전반에 관한 총체적 점검을 통해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도 비슷한 사고를 막지 못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도심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철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사 현장과 주변의 대대적인 안전 점검을 통해 다시는 도심 거리에서 날벼락을 맞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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