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성향 국민 정권교체 열망, 민주화 이후 어느 정권 때보다도 간절
국민의힘 청년돌풍은 그런 열망 담아내지 못하는
낡은 野 뜯어고치겠다며 국민이 직접 나선 것
환골탈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세대교체 선택
文 정권은 안면몰수하고 또다시 檢 장악 인사
이런 정권 행태 누적돼 거대한 민심 태풍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사에서 야(野) 성향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이 지금처럼 간절했던 적이 있었을까.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 비율이 다른 정권 때에 비해 많다거나 적다거나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어느 정부 때나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있었지만, 그 간절함 정도가 지금만큼 절절한 때는 없었다는 뜻이다.
호남민심이 노무현 등 영남후보를 택한 것을 놓고 ‘전략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데, 지금 보수 민심의 움직임은 그런 수준을 넘어선다. 메뉴판의 옵션들 중 선택하는 게 아니라, 식당 자체를 새로 만들자는 수준이다.
국민의힘 대표경선에 몰아친 바람을 ‘이준석 열풍’이라 부르는 건 정확하지 않다. 이준석은 바람을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한 바람개비일 뿐이다. 정권교체 열망이 픽업해 등에 태운 객체인 것이다.
집권세력의 행태에 분노한 수많은 모래알들은 정권교체라는 목적지로 달려갈 방법이 없어 절망했다. 그러던 중 윤석열이라는 뜻밖의 엔진이 나타났다. 그러나 엔진을 장착할 열차는 삐걱대고 냄새나는 완행열차고, 기관실과 객석은 기득권 정치인들이 차지한 채 술판과 고스톱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열차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중도층과 젊은이에게 함께 타고 가자고 권유할 수 없다”며 모래알들이 이심전심 의기투합했고,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세대교체라는 판단 아래 청년후보를 택했다.
그중 가장 지명도가 높은 게 이준석이었다. 초선 김웅이 첫 테이프를 끊으며 선수(選數)의 터부를 깨뜨렸고, 실력파 윤희숙 등이 ‘초짜’에 대한 신뢰를 보강해줬다.
세대교체 역시 중요한 목표며 성취지만, 많은 이들에게 세대교체는 변화를 확실히 보여줄 수단의 의미가 컸다.
이런 거대한 민심의 태풍 앞에서 노회한 정치공학자들, 중진 정치인들의 셈법과 전술은 추풍낙엽이 됐다. 중진들은 영남차별론, 계파론, 음모론 등을 잇달아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의 뇌구조가 얼마나 낡은 시대에 갇혀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며, 스스로 퇴장의 문을 열었다.
이른바 제3지대론도 힘이 빠지게 됐다. 이는 국민의힘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표현대로 “아사리판” 구태에서 못 벗어나는 걸 전제로 유효한 것이었다. 그런데 민심의 태풍이 시간표상 국민의힘 대표경선에 가장 먼저 닥쳤고, 그 강도가 정치공학자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버렸다.
윤석열 현상에 대해 여당은 “언론이 만든 허상”이라 비난하고, 야권 내에서도 정권 실정(失政)의 반사광(光)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윤석열은 아직 검증된 게 없지만, 정권의 총공격에 굽히지 않고 180 대 1의 싸움을 버텨내, 결과적으로 ‘조국 승계’라는 친문진영의 환상적 구도를 좌절시키고 집권세력의 허울을 벗겨냈다는 사실만을 놓고 봐도 윤석열 현상을 단순 반사광이나 허상으로 치부하는 건 비논리적 자기 위안에 그칠 수 있다.
양심과 법리를 지킨 일선 판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창출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런 민심의 태풍이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답은 지난주 검찰 인사에서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후안무치·안면몰수라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권은 대놓고 검찰 장악 의도를 드러냈다. 말 안 듣는 시장통 점포들을 부수고 돌아온 조폭들이 중인환시리에 논공행상을 벌이고 알짜 업소와 길목에 심복들을 심어놓는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보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은 집권세력이 검찰 문제 등 자신들의 안위가 걸린 사안에 대해 논의할 때 5공 시절 관계기관대책회의처럼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몇몇 정권 실세 실무진이 고집을 피우면 다른 관련 기관들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력 있는 브레인들이 모여 진보진영과 집권당의 장기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다면 이런 악수(惡手)를 거듭할 리가 없다.
34년 전 6월항쟁 당시 많은 국민은 간절한 마음으로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갈망했다.
어렵게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여전히 상당수 국민이 민주주의와 법치의 훼손을 걱정하며 정권교체를 갈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권을 내놓은 후의 배고픔에 대한 ‘기억’은 문재인 정권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 있고, 그만큼 더 악착같게 만들 것이다.
야당의 기관사가 바뀌고 엔진을 새로 달아도 선로는 결코 평탄치 않을 것이다. 새 기관사는 민심이 변화의 도구로써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그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내비게이션은 환골탈태하라는 민심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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