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붕괴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작업에 10여 개 업체가 참여한 다단계 하청이 이뤄진 정황을 경찰이 파악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고질적인 하청-재하청 구조가 부실 공사로 이어지면서 이번 사고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전문업체가 다른 전문업체에 다시 하청을 주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일반건축물 철거 공사를 맡은 한솔기업, 석면 철거를 수주한 다원이앤씨가 백솔건설 등에 재하청을 준 것 자체에 불법 소지가 있다. 하청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현장에서는 누구의 지시로 어떤 작업이 이뤄졌는지조차 불분명했다.
또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3.3m²당 28만 원에 공사비를 계약했지만 재하청 과정에서 단가가 연쇄적으로 낮아지면서 백솔건설은 3.3m²당 4만 원을 받고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려면 인건비, 자재비 등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공사를 서둘러 마치려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요인들이 합쳐져 부실 공사가 이뤄지면서 이번 참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려면 재하청의 문제점을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철거 공사 현장에서 일제점검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사 현장의 안전 확보도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경찰은 이번 철거 공사에서 재하청이 이뤄진 과정과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밝혀내고, 국토부는 건설·철거 현장에 만연한 재하청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는 게 순서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제점검 실시, 매뉴얼 작성 등 판에 박힌 대응으로는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이번 사고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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