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 싸여 마차에 실린 모차르트의 시신이 구덩이에 던져지고, 인부가 횟가루를 한 삽 퍼서 뿌린 뒤 서둘러 사라진다. ‘아멘’을 노래하는 구슬픈 합창이 화면 가득히 퍼진다. 작곡가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장송곡이 된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미사곡) 중 ‘라크리모사’(눈물의 날)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묘사된 모차르트의 마지막 길이다. 그런데 잠깐, 이 ‘아멘’을 모차르트가 쓰지 않았다면?
예술사상의 거장들이 대작을 미처 끝맺지 못하고 삶을 마치는 일은 자주 있다. 그림이라면 스케치 상태로 전시할 수도 있지만, 미사곡이나 오페라를 쓰다가 중단했거나 선율에 화음을 붙이지 못했다면 세상에 내놓기 곤란해진다. 연주를 위해 갖춰야 할 형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듯이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눈물의 날’ 부분에서 모차르트가 완성한 부분은 처음 여덟 마디까지다. 그 뒤는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이어받아 완성했다. 모차르트의 장례 장면에 나오는 ‘눈물의 날’에는 모차르트가 쓴 부분과 제자가 이어받은 부분이 섞여 있다. ‘아멘’ 합창은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부분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부분이 모차르트의 스타일과 다르다, 모차르트의 수법과 비교해 미숙하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몇몇 음악학자와 작곡가들이 새로운 ‘대안’ 악보를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불을 붙인 사건이 ‘아멘 푸가’ 악보 발견이다.
1960년에 모차르트가 합창을 위해 쓴 푸가(여러 연주 파트가 특정 주제를 모방하면서 뒤따라가는 것) 악보가 발견됐다. 이것 역시 미완성 악보였고 가사는 ‘아멘’만으로 되어 있었다. 이 악보가 모차르트 ‘레퀴엠’의 다른 파트 악보와 함께 발견된 데다 ‘라크리모사’와 같은 D단조였기 때문에 음악학자들은 이 아멘 푸가가 ‘라크리모사’ 마지막 부분에 붙이려던 것이라고 추측했다. 음악학자 로버트 레빈과 덩컨 드루스 등이 이 아멘 푸가를 적용한 새로운 악보를 만들었다. 이렇게 새로 완성된 모차르트 레퀴엠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쥐스마이어 판의 대안으로 종종 연주된다.
작곡가가 대작을 끝맺지 못하고 죽은 다른 사례로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0번이 있다. 말러는 이 곡을 1악장만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5개 악장 중 나머지 네 개 악장도 선율 부분은 다 써두었다. 화음을 붙이고 악기 파트를 지정해서 관현악용 악보로 만드는 일이 남은 셈이다.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쿡이 먼저 1960년에 이 곡 전체의 ‘연주회용 버전’을 발표했다. 말러가 끝내지 못한 곡을 감히 완성했다고 선언할 수는 없고, 연주해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판이라는 의미였다. 말러는 관현악 색채가 독특하기로 정평 나 있어서 타인이 모방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쿡의 악보는 너무 색깔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뒤 여러 작곡가와 음악학자들이 말러의 독특한 색깔을 재현한 새 악보를 만들려 시도했다. 음악학자 마체티, 지휘자 바르샤이 등이 만든 악보들의 연주도 오늘날 여러 음반과 음원으로 발매되어 있다.
근대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푸치니도 마지막 오페라인 ‘투란도트’를 끝부분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푸치니의 소속사인 리코르디는 신예 작곡가인 알파노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알파노는 푸치니가 오페라 앞부분에 사용한 소재들을 다시 끌어와서 화려한 피날레를 만들었다. 이 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이 피날레 바로 앞에 나오는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왕자의 이중창에 대해 ‘푸치니답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푸치니 사후 77년 만인 2001년에 작곡가 루차노 베리오가 완성한 대안 버전이 나와서 눈길을 끌었다. 이 버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알파노 버전처럼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게 끝난다.
17일 경기 수원시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선 박지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수원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로버트 레빈이 ‘아멘 푸가’를 적용해 새로 악보를 만든 모차르트 레퀴엠을 연주한다.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천재의 운명과 함께 이 작품이 겪은 풍상을 기억하며 새롭게 들리는 부분을 따라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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