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손은 상속재산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게르만족의 법률 격언이 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상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유언을 통해 자녀의 상속권을 제한하고, 프랑스는 피상속인을 살해한 사람 등에게는 상속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상속권이 박탈되는 중대한 결격 사유들을 민법에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재산을 물려주기에는 괘씸한 경우가 종종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공산권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옛 소련도 볼셰비키 혁명 직후인 1918년 상속제를 폐지했다가 1922년 부활시켰다. 북한은 2002년 제정한 상속법에서 주택, 도서, 화폐, 승용차 등 구체적으로 상속을 인정하고 있다.
▷각국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직계존속이나 피상속인 등에 대해 살인, 살인미수 등 범죄를 저지르거나 유언장을 위조한 사람 등이 대상이다. 하지만 피상속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거나 부양 의무를 위반하는 등 사회 통념상 상속이 부적절해 보여도 직계존비속, 배우자, 형제자매의 상속권은 일정 부분 보장된다.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연락을 끊고 살던 희생자의 친모가 나타나 사망보상금의 상당부분을 가져가는 등 논란이 제기되는 사건이 여럿 있었지만 법은 바뀌지 않았다.
▷2019년 11월 가수 구하라 씨 사건은 이 문제가 크게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구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12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했고, 친모의 상속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다. 구 씨의 오빠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구 씨 부친에게 60%, 친모에게 40%의 상속권을 인정했다. 구 씨를 키우는 데 아버지가 기여한 점이 참작됐지만 친모의 상속권을 아예 뺏을 법적 근거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에는 28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숨진 딸의 유산 대부분을 가져간 일이 있어 ‘제2의 구하라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부모 등에게 법원 결정을 거쳐 상속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민법 개정안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른바 ‘구하라법’이다.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구 씨 모친 같은 경우는 상속을 받기 어렵게 된다. 법제를 손질하더라도 재물에 대한 사람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상속 관련 분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법치의 기본원칙은 상속 문제에도 적용된다. 그 원칙은 자신의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면 법치국가 시민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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