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를 향해서도 연민의 감정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주교가 그러한 경우다. 그의 연민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나이지리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다. 그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흑인이 비행기를 운항하는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같은 흑인이라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며 고도가 뚝 떨어졌을 때였다. “조종석에 백인이 아무도 없는데 어쩌지. 흑인 조종사들이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생각을 했다. 그가 누구인가.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설 수 있다고 선도하는 흑인의식 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럼에도 백인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다.
그의 요지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지배적인 정서에 현혹될 수 있는 존재인지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지자는 거다. “하느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도 같은 처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해자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거다. 그런데 흑인들에게 무지막지한 짓을 한 백인들을 어떻게 용서하자는 말인가. 복수해도 시원찮은데 용서라니. 자기 민족에게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반세기가 훌쩍 넘어서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 단죄하는 유대인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게 세상이다. 그러나 그는 복수심으로 가득한 유대인들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보고서는 “같은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이라면 용서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셨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극우 유대인들로부터 “흑인 나치 돼지”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그는 용서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용서가 곧 미래였다. 바로 이것이 ‘진실화해위원회’의 기본 이념이었다. 세계사에 전례 없는 눈부신 용서의 정치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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