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윤종]‘미-러 정상회담은 축제’라는 제네바 시민의 여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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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틈바구니 속 영세중립국 스위스
美中 양자택일 강요받는 한국에 시사점

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16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주요 도로마다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차량 이동은 불가능했다. 인도까지 막히다 보니 동선이 꼬여 5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30분이나 돌아가야 했다. 1월 집권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해외에서 첫 대면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두 명의 패권국 정상이 등장한 상황을 반영하듯 스위스 정부는 경찰은 물론 군까지 동원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특히 회담 장소인 18세기 대저택 ‘빌라 라 그랑주’ 일대는 개미 한 마리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가 심했다.

어지간한 도로가 다 차단된 데다 30도 넘는 무더위까지 겹쳐 피로가 상당했다. 그러나 이날 취재한 10여 명의 시민들은 조금의 불편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과한 통제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급해하면 더 덥다”며 웃거나 “레만 호수를 보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하는 여유를 보였다.

상당수 시민은 기자가 묻기도 전에 1985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냉전 종식의 기틀을 마련했음을 언급했다. 자영업자 메테오 씨는 36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정상회담 역시 양국의 첨예한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오늘 가게 문을 일부러 닫았다. 세계가 주목하는 미-러 정상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린 것 자체가 축제”라고 강조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유한 스위스는 유럽의 한복판에 위치한 데다 크지 않은 국토와 인구를 보유한 탓에 굴곡진 역사를 갖고 있다. ‘미-중-러-일’ 4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처럼 스위스 또한 독일(북) 프랑스(서) 이탈리아(남) 오스트리아(동)와 국경을 접한 탓에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렸고 외세 개입도 심했다. 그런데도 다른 국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나라 또한 스위스를 침공하지 않는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이란 독특한 지위를 통해 생존을 이어왔다.

스위스의 영세중립국 지위가 확정된 시점은 1815년.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유럽의 전후 체제를 논의하며 스위스의 중립국 지위를 보장했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스위스는 유럽 주요국에 부단한 외교적 노력을 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 또한 갖췄다. 아직도 바티칸에서 교황을 경호하는 조직이 스위스 근위대란 사실만 봐도 스위스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중립국 위치를 지키기 위해 당시 기축통화 역할을 한 스위스프랑도 적절히 활용했다. 벨기에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등 한때 중립국을 선언했지만 외세 개입, 경제적 이유 등으로 포기한 국가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스위스를 무작정 칭송하거나 한국 역시 중립국이 되자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이번 제네바 방문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이 제대로 된 전략 없이 대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반미’ 혹은 ‘반중’의 이분법만이 횡행했던 탓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국익 극대화란 ‘절묘한 줄타기’를 해온 스위스에서 조금의 힌트라도 얻어 보면 어떨까?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순간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강도 또한 더 세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제네바에서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미-러 정상회담#제네바#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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