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 10월 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극장은 ‘세비야의 이발사’ 러시아 초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내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랑스의 유명한 프리마돈나가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숨죽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못생겼네.” 기대와는 달리 여가수의 미모는 별로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고혹적인 음성은 곧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여가수의 이름은 폴린 비아르도. 스페인계 프랑스 성악가로 16세에 데뷔하여 4년 만에 유럽 정상의 자리에 오른 전설적인 디바였다.
폴린은 공연 첫날 북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제압했다. 특히 그날 객석에 앉아있던 한 청년은 단박에 그리고 영원히 그녀의 포로가 되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청년은 극장에 와서 손바닥에 피멍이 들도록 박수를 쳤다.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극작가인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의 40년 동안 지속될 기이하고 슬픈 사랑의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삶으로 써내려간 연애소설
투르게네프는 오룔주에서 5000명의 농노를 거느린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와 베를린대에서 수학했으며 프랑스어와 독일어 등 7개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살아생전에 그는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쓰는 러시아 작가로 유럽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럼에도 투르게네프는 동시대의 다른 두 거인,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에 비해 아무래도 좀 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상 그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살아 돌아와 무섭게 써댄 도스토옙스키나 백발 수염을 휘날리며 전 인류의 스승으로 우뚝 솟아오른 톨스토이 같은 ‘선수들’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다정하고 섬세하고 온순한 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 거인들을 양어깨에 짊어진 채 힘겹게 ‘3인방’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러나 투르게네프는 이 두 작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역시 거물이다. 그는 언어가 아닌 삶으로써 세계 최고의 장편 연애소설을 썼고 그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부와 지성과 외모를 겸비한 청년 투르게네프는 폴린의 남편 루이 비아르도와 먼저 알음알이를 튼 후 폴린에게 다가갔다. 유명한 아내에게 워낙 추종자가 많아서 그랬던지 루이는 러시아 청년의 접근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이 세 사람의 인생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궤도를 밟으며 흘러갔다. 폴린과 루이는 끝까지 결혼의 신성함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4명의 자녀를 두었다. 투르게네프는 평생 독신을 고수하며 폴린에게 애정과 충절을 바쳤다. 관대한 남편 루이의 묵인하에 부부가 가는 곳이면 어디고 따라다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문우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에게 그는 “폴린의 명령이라면 발가벗고 온몸을 노랗게 칠하고 지붕 위에서 춤추라고 해도 그렇게 할 각오가 되어 있소”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연스럽게’(!) 비아르도 가정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그들을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유일한 가족”이라 불렀다.
폴린에게 바친 절대적인 사랑
그가 청년기 이후 거의 전 생애를 러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보낸 것도 비아르도 가족 곁에 있기 위해서였다. “당신이 없으면 마치 공기가 부족한 것처럼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납니다.” 1863년 투르게네프는 비아르도 부부를 따라서 독일 온천 도시 바덴바덴으로 건너갔다. 1871년에 비아르도 부부가 프랑스 파리 근교 부지발로 이주하자 투르게네프도 부지발로 이동하여 사망할 때까지 그들 곁에서 살았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는 폴린을 “여왕 중의 여왕”이라 불렀고 그녀에게 전 재산을 상속했다.
당연히 투르게네프의 사랑은 숱한 억측과 냉소와 통속적인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러시아인들은 자기네 대표 작가가 프랑스 여가수 부부의 더부살이로 전락한 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렸다. 비아르도 부부가 투르게네프의 진심을 이용한다는 비방도 끊이지 않았다. 투르게네프 자신도 폴린에 대한 섭섭함과 보답 없는 사랑에서 오는 피곤함과 서글픔을 지인들에게 종종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투르게네프의 사랑은 비아르도 부부의 속내와도, 다른 사람들의 추측과도, 심지어 그 자신의 인간적인 회한과도 별로 상관이 없다. 만일 이 세상에 절대적인 사랑이란 것이 가능하다면 투르게네프의 사랑이 아마도 거기 근접할 것이다.
무상함에 저항하는 ‘사랑’
투르게네프에게 첫사랑은 지각 대변동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이다. “첫사랑은 혁명과도 같다. 판에 박힌 듯 질서정연하고 규칙적인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져 와해된다. 청춘이 바리케이드 앞에 서고 그 찬란한 깃발이 하늘 높이 펄럭인다.” 그러나 이렇게 강렬한 사랑도 결국 무자비하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그것은 “봄날 새벽에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간 뇌우”로 기억될 뿐이다. 투르게네프가 세상을 하직하기 2년 전에 발표한 산문시 ‘그 모습 그대로’는 저 막강한 시간성에 대적하는 절대 사랑을 묘사한다.
시의 화자는 천상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아름다운 여가수를 바라보며 그 모습 그대로 남아달라고 애원한다. 그것이 허망한 갈망임은 그도 안다. 언젠가는 그녀도 한 줌의 재로 돌아가고 차가운 조각상만이 그녀 대신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사랑이 신적 차원으로 고양된다면 그녀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신의 입맞춤이 네 차가운 대리석 이마에서 불타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불멸이다!” 그의 숭고한 사랑이 지속되는 한 그녀는 “모든 무상한 것의 저 위에, 저 바깥에” 존재한다. 지상의 사랑은 영원과 하나가 된다. 화자는 그녀에게 “네 불멸을 내게도 나누어 주기를, 네 영원의 광채를 내 영혼에도 비춰주기를” 간청하며 시를 마무리한다. 이 대목이야말로 투르게네프가 40년 인생으로 쓴 연애소설에 대한 주석이다. 사랑은 그에게 무상에 저항하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폴린도 갔고 투르게네프도 갔다. 그러나 폴린에 대한 그의 사랑은 살아남아 그와 관련한 모든 기록의 전면에 등장한다. 사랑은 폴린이 아닌 투르게네프 자신을 불멸로 만들어 주었다. 사랑을 승패로 가르는 것은 부질없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사랑에서 승자는 언제나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다. 투르게네프는 소설보다 먼저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당신은 사랑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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