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을 가장 좋은 곳에[공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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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가구도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봐도 정이 안 가는 것이 있다. 우리 집에서 그런 가구를 꼽으라면 식탁이다. 폐업하는 카페에서 할인을 하길래 냅다 데려왔는데 영업 공간에 둘 목적으로 만든 제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내구성과 디자인이 떨어진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상판이 유리라는 점. ‘오늘 음식 좀 예쁜데?’ 싶어 휴대전화를 꺼내 앵글을 잡는 순간 아래로 마룻바닥이 보이고 주변 집기가 반사돼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 집들이로, 가족 모임으로 지인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참 좋았어’ 하고 여운이 남는 곳이 몇 있는데 공통점이 뭘까 생각해 보니 식탁이었다. 그들 집에는 식탁이 거실에 있었다. TV는 안방이나 작은방으로 보내고 기꺼이 식탁에 주연 자리를 맡긴 것이다.

위치도 가장 좋은 곳에 세심하게. 어떤 곳은 베란다 쪽으로 식탁을 붙여 식사하는 동안 바깥 풍경과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식탁 맞은편 상부장에 좋아하는 그림을 올려 두고 그 옆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 놓은 곳도 있었다. 듣기 좋은 음악이 흐르고, 지글지글 요리가 하나씩 완성돼 테이블 위에 오르고, 술이 채워지는 공간. 주인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 우리 천천히 즐깁시다’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먹고 마시는 것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을 보면 좋아 보인다.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참 보기 좋고 닮고 싶은 일상이다.

식탁을 거실로 빼다 보니 주방과 거리가 생겨 불편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곧 사라졌다. 음식을 들고 오는 그들의 발걸음이 사뿐사뿐 경쾌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효율적인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답도 아니다. 특히 집에서는. 효율의 다른 이름은 속도일 텐데 집에서까지 그렇게 살 필요가 뭔가.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슬로 슬로, 안단테 안단테.

기능성과 편리함을 중시했던 모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가구를 ‘집을 위한 기계’라 정의했지만 식탁만큼은 그런 건조한 설명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식탁은 웃음과 위안, 평화와 온기를 느끼는 곳이니까. 음, 내가 식탁을 정의한다면 ‘일상을 축하하는 가구이자 공간’이라 말하고 싶다. 식탁이 그 자체로 공간인 건 아니지만 그곳에 앉는 사람들의 기분을 고양하듯 둥실 띄우고, 감각도 확장해 준다는 걸 생각하면 공간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한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식탁을 대충 막 샀으니 후회막급. 이번에는 꼭 좋은 것으로 잘 골라야지. 그리고 가장 좋은 곳에 놔 둬야지. 어서 빨리 목돈이 생기면 좋겠다.

#식탁#위치#가장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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