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헝가리 및 유럽축구연맹(UEFA)이 ‘스포츠와 정치의 충돌’ 논란을 일으킨 지난 며칠 동안 한국과 일본 및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독일과 헝가리의 논란은 헝가리가 최근 통과시킨 성소수자 관련 법안 때문에 일어났다. 헝가리 의회는 15일 미성년자 대상 영화와 광고 등에서 동성애 등의 묘사를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헝가리는 이 법안이 소아성애 퇴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독일과 유럽연합(EU) 등은 이 법안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란은 독일과 헝가리의 2020 유럽축구선수권(유로) 경기 개최 장소인 독일 뮌헨시가 개입하면서 증폭됐다. 뮌헨시가 성소수자들 및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포용하는 상징인 무지개색 조명을 경기장에 비추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헝가리가 자국의 결정에 간섭하는 데 반발했다. 헝가리 외교장관이 뮌헨시의 조치에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인다”고 비판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24일 열린 경기 참관을 취소했다. 경기는 2-2로 비겼다.
영국 BBC가 ‘스포츠와 정치의 충돌’이라고 표현한 이 과정에서 UEFA가 택한 입장은 결국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 우선’이었다. 먼저 UEFA는 뮌헨시가 경기 당일 외벽에 무지개색 조명을 비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헝가리를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UEFA는 이 결정에 대해 성소수자의 차별에 동의하는 것이냐는 비난이 쇄도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UEFA 로고를 무지개색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UEFA가 뮌헨시와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그들과의 연대를 지지한다는 표시였다. 이념적으로는 한쪽을 지지하면서도 경기장에서는 이로 인한 편향성이 공식화되는 걸 막고자 했다.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끄는 스포츠 행사에서 정치 이슈가 우선시되기 시작하면 스포츠는 경기력 경쟁이 아닌 이념의 무대가 되기 쉽다. 정치적 분쟁을 떠난 평화적 중립지대라는 스포츠의 위상도 흔들리다.
이런 논란이 한창이던 22일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는 IOC로부터 도쿄 올림픽 독도 관련 답장을 받았다. 10일 한국이 보낸 항의 서한에 대해 일본의 성화 봉송로 내 독도 표기 문제가 지형학적 표현일 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때 IOC가 일본 측의 항의를 받고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빼달라고 했던 데 비하면 일방적으로 일본 편만 드는 모습이다.
하루 전인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황희 문체부 장관은 역시 일본과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러시아와 연계해 독도 문제에 대처하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외교부가 어떤 입장인지는 아직 못 들어봤다”고 답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 정치와 체육을 분리한다는 원칙도 있고, 그 다음에 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전략적 사고가 있는 것 같다. 이걸 회피할지 적극 대응할지는 외교부의 판단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황 장관의 이번 발언은 올림픽에서의 독도 문제 때문에 러시아와 연계하는 데는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 원칙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를 교조적으로 적용시켜 우리의 대응 폭을 좁게 만드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일본은 올림픽에 독도 문제를 끌어들여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를 내세우고, 또 그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넘어간다면 결국 일본의 정치적 선전과 주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현재 상황은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시키기 위한 정치적 역량이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UEFA의 결정이 보여주듯이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는 중요한 원칙이다. 장기적으로 스포츠 자체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 달도 남지 않은 도쿄 올림픽에서 독도 문제로 촉발된 정치 이슈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건 그만큼 일본과 IOC의 정치적 경제적 결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더 힘들지만 황 장관의 발언 속에 등장한 ‘회피’가 우리의 최종 전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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