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너무 공조하면 논란이 되고 너무 엇박자를 내면 혼란을 준다. 지난달 24일 이주열 한은 총재가 연내 금리 인상을 공식화한 지 일주일 만에 기재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역대 최대 수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은 엇박자 혼란 쪽이다. 한은이 거품에 잘 대응하는 반면 기획재정부는 돈 풀기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재부라고 거품 걱정을 안 할까 싶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초 서울 아파트 가격이 고점에 근접했다며 부동산 거품론을 꺼냈다. 경제부처 관료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거품 가능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한다.
2일에는 홍 부총리와 이 총재가 조찬회동도 한다. 밥 먹는다고 거품 공조가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다. ‘투기적 거품’을 측정하는 일부터 꼬여 있다. 투기에 대한 정의가 없으니 측정 자체가 안 된다. 상품의 내재가치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걸 투기라고 한다면 ‘내재가치’를 밝혀내는 게 먼저다. 거래가에서 내재가치를 빼면 부풀려진 가격이 드러날 것이다. 이게 거품 대응의 출발점이다.
예컨대 아파트의 내재가치는 전세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맡겨뒀다가 돌려받는 전세금은 속성상 자본이득이 생길 수 없고 그 자체가 주택 내재가치의 일부다. 주택 가치의 기준인 전세금에 비해 매매가격이 높은 정도가 거품의 크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서울의 매매가는 전세가의 1.8배 수준이다. 지난 정부 때인 2015년에는 이 배율이 1.4배,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는 2.5배 정도였다. 지금의 거품은 직전 정부보다는 크고 금융위기 때보다는 작은 셈이다. 이렇게 우리는 여러 가지 거품 속에 있다. 자연스럽게 줄어들 거품, 점점 커질 거품, 터지면 쇼크가 될 거품, 터져도 걸레질만으로 닦아낼 수 있는 거품…. 이런 분류도 없이 그저 거품에 대비하자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말이다.
거품 빼는 데도 순서가 있다. 정부와 한은이 정말 정책 공조를 한다면 ‘소 잡는 칼’ 격인 금리를 올리기 전에 수술용 칼부터 골랐어야 한다. 눈앞에 닥친 위기는 중소기업이다. 한은에 따르면 장사해서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은 취약기업은 지난해 1000개가 넘었고 이 중 340개는 4년 이상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돈의 힘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 이런 취약기업들은 경제의 생산성을 갉아먹고 한꺼번에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에 충격을 준다.
당국은 비상시국에 뿌려둔 돈부터 천천히 거둬들여야 한다. 취약기업이라고 모두 무너지는 건 아니다. 시장금리로 계속 연명할 수 있다면 그 기업은 살아남을 만한 것이다. 그 다음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 어차피 우리 안에서 돌고 도는 재정으로 소비 투자를 살리는 건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길게 봐선 효과가 떨어진다는 게 학자들의 진단이다. 중소기업에 뿌려둔 정책자금을 회수하고 재정 지출을 정상화하는 단계를 거친 뒤에 비로소 할 일이 금리 인상이다.
이런 ‘질서 있는 긴축’을 말하는 당국자는 아무도 없다. 중소기업이 이 정부에서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됐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에는 무지하고 게으른 사람이 많았다. 골프 치느라 청와대 전화를 못 받았다거나 사무관이 국제신용평가사 관계자를 햄버거집에서 만나 적당히 이야기해 돌려보냈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지금 우리 공무원들은 똑똑하고 부지런하지만 정치에 물들었다. 위기를 입에 올리지 않는 건 24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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