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수사가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수사는 생물이라는데 이 사건만큼 역동적인 사례도 흔치 않다. 공격과 수비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등장인물의 스펙트럼이 다채로워졌다. 본 사건의 ‘주연’인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는 뒤로 빠지고 어느새 ‘조연’들로 무대가 채워졌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성접대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의 김학의 사건은 김 전 차관이 공권력 남용의 피해자인 사건이다.
“고위 공직자와 건설업자의 유착이라는 본질을 봐야 한다.”
김 전 차관을 불법 출국금지하는 데 관여했거나, 출금 과정에 위법이 있었는지 밝히려던 검찰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하고 싶을 것이다. 수사를 앞둔 김 전 차관이 2019년 3월 그날 밤 태국행 비행기에 오르도록 놔뒀어야 하느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진상 규명을 위해 당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것은 맞다. 성접대 사건에 대한 2013년 경찰의 1차 수사, 이후 2차례의 검찰 수사는 부실했다. 수사의 기본인 김 전 차관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이 수사 시작 6년 만인 2019년에야 이뤄졌다. 그해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권고로 출범한 검찰 수사단은 출범한 지 불과 4일 만에 그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그 정도로 앞서 진행된 수사에서 해놓은 게 없었다.
김 전 차관 성접대 사건 수사는 ‘구체제’와의 전쟁이기도 했다. 검사의 스폰서 관행은 공직자가 지위를 악용해 사적 이익을 누린 대표적 구악이었다. 혐의를 최초 인지한 경찰이 고검장 출신의 법무부 차관을 수사하는 것 역시 관행에 대한 도전이었다. 경찰이 검사를 상대로 벌이는 수사는 검찰에서 번번이 막히던 때였다.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은 충분히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구태를 청산하겠다면서 같은 구태를 반복하는 역설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과 법무부, 대검 간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요건에 맞지 않는 긴급 출국금지를 감행했다. 그들 중 일부는 출금 경위를 밝히려던 수사팀의 수사까지 무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일련의 사태를 수사한 수원지검 수사팀은 대검의 반대에 부닥쳐 이광철 민정비서관을 기소하지 못할 뻔했다가 팀 해체 하루 전 기습작전 하듯 가까스로 기소했다.
전반기 6년이 부실·축소 수사였다면 김 전 차관 출금 이후 후반기는 절차를 건너뛴 폭주 기관차식 수사였다. 지향점이 달랐을 뿐, 힘을 가진 쪽이 덜 가진 쪽을 찍어 누르는 작동 원리는 다르지 않았다. 불법 출금 수사 자체가 사건의 본질을 흐린 것이 아니라 위법적으로 출금 조치가 내려지면서 본질이 오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출금 과정의 위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채 김 전 차관에게만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김학의 사건은 정치권력이 ‘선택적 정의’를 추구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동시에 김 전 차관을 국가 권력의 피해자로 격상시켜 면죄부를 주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사건의 본질이 가장 심각하게 흐려지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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