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강아지 구충제 열풍이 뜨거웠다.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미국의 한 폐암 환자가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을 먹고 상태가 좋아졌다며 자기 블로그에 소개했다. 이것이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펜벤다졸이 마치 암 치료 명약인 것처럼 비쳤고, 다시 소셜미디어를 타고 인터넷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암 전문가들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펜벤다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지만 강아지 구충제 열풍은 식을 줄 몰랐다. 심지어 폐암 투병 중인 한 개그맨은 구충제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암 전문가들과 식약처 경고에는 수많은 악플이 달렸다. 구충제는 희망이었고, 구충제를 먹지 말라는 것은 절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이러했다. 미국의 폐암 환자는 구충제가 아닌 면역항암제 덕분에 암이 치료된 거였다. 구충제는 장 속 기생충을 죽이는 약으로 장 속에만 머물며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 만일 몸에 흡수되면 장 괴사나 간 부작용이 생긴다. 몸에 흡수되지 않는데 암세포를 죽일 리 없고 암 치료에 효과가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많은 암 환자들이 구충제를 복용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근본적으로는 환자들이 너무나 절박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수밖에 없다. 반면 의사나 이 분야 관련 공무원은 절박하지 않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물 밖에서 “눈앞의 그건 지푸라기야. 잡아봐야 소용없어”라고 말한들 그게 제대로 들리겠는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구충제라도 한번 먹어보고 죽겠다는데 그마저도 먹지 말라고 하면 환자들은 어떻게 느낄까.
당시 환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보다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고 했다. 0.1%의 희망이라도 품고 구충제를 먹으면서 단 몇 달만큼은 마음이 편안했다는 것이다. 결국 옳지만 냉정한 말만 계속 해대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무작정 구충제 먹지 말라는 말 대신 호스피스 완화의료나 임상시험 같은 다른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줬어야 했다. 호스피스 병상을 확충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절박함에 대안을 마련해 줬어야 했다.
안타깝지만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절박한 마음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제2, 제3의 구충제도 앞으로 계속 나오지 않겠나. 환자들은 효과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구충제를 구인제(救人劑)로 삼으며 기뻐했다.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이들의 절박함을 누군가는 알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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