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대통령선거 출사표를 통해 ‘압도적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압도적’이란 단서에는 다목적 포석이 깔린 듯하다. 무엇보다 기존 보수 세력을 넘어 중도층, 문재인 정권에 등 돌린 진보 세력까지 아우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반문(反文) ‘빅 텐트’ 전략이다. 여기엔 지지율 1위의 야권 대선주자인 자신만이 이 같은 과업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깔린 듯하다. 대세론을 굳혀가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과 문 정권에서 이탈한 중도 세력은 반문 정서에서 접점을 찾았다. 그 공감대가 윤석열의 고공 지지율에 투영된 것이다. 여기엔 친문 세력의 압박에 맞서온 윤석열의 스토리가 밑거름이 됐다. 이런 상황에선 문 정권이 망쳐놓은 공정과 상식,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회복이라는 추상적 구호만으로도 지지율 유지는 가능했을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는 ‘새 정치’를 강조했다. 그 구호만으로도 기성 정치권과 선을 긋는 ‘탈정치’의 참신함이 부각됐다. 당시 여당의 박근혜 캠프는 갑자기 휘몰아친 안철수 바람을 이명박 청와대의 ‘기획 상품’이라고 의심할 정도였다. 박근혜 캠프가 보수 진영의 통념을 깨면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복지 공약을 가다듬은 것은 안철수 바람에 맞대응하겠다는 속내도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의 ‘새 정치’ 실험은 결국 실패했다. 확고한 둥지를 만들지 못한 채 이곳저곳 찔러보기만 한 ‘간철수 정치’에 그쳤기 때문이다. 바람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은 출사표에서 “국민의힘과 정치철학은 같다”고 하면서도 정작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대해선 답변을 유보했다. 자신을 지지하지만 국민의힘엔 미온적인 중도 세력이나 친문 이탈 세력을 의식한 모습이다. 잘못하면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표심을 한꺼번에 잡을 순 없다. 확고한 지지층부터 다져가면서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 고정 지지층의 뒷받침이 있어야 중도 세력까지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비전과 정책을 내걸 수 있는 것이다. ‘36세 0선(選)’ 제1야당 대표의 돌풍도 깜짝쇼처럼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준석이 10년 가까이 보수 진영에서 이력을 쌓아왔기에 강성 지지층도 그의 돌직구에 신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젠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의 시간이다. 정치는 바깥에서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직접 꼬인 매듭을 풀고 해결해야 하는 영역이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의힘에 들어가서 정당 쇄신과 혁신을 주도하는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1, 2위 후보 표 차가 압도적으로 벌어진 때는 2007년 대선이다. 1위(이명박), 2위(정동영)의 표 차는 530만 표나 됐고, 강경 보수 성향의 이회창 후보 득표율도 15%였으니 진보좌파 진영의 완패라고 할 만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워낙 컸지만, 내전(內戰) 수준으로 증폭된 당청 갈등도 무시할 수 없는 패인이었다.
여권이 제대로 2007년 대선을 복기한다면 수세 국면 전환에 나설 공산이 크다. 그래서 신군부 세력이 1987년 대선 당시 직선제 요구를 전격 수용해 반전에 성공한 ‘6·29선언’ 시즌2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더욱이 내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선 정국에선 앞으로 수차례 파고가 몰아칠 것이다. 윤석열이 반문 반사이익에 기댄 대세론에 안주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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