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이 입던 우비에서 유래했다. 1차대전의 상징이 참호전이다. 연합군과 독일군이 막상막하의 전력으로 대치하면서 전선에는 10중의 참호와 철조망이 겹겹이 가설되었다. 참호는 고대, 중세 전쟁에서도 사용되었지만, 1차 대전 때는 상황이 달랐다. 야포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해서 구경 200mm 이상의 거포에 열차포까지 등장했다. 대구경포는 지름 수십 m의 포탄 구덩이를 만들었고, 여기에 물이 고이면 병사들이 빠져 익사하기도 했다.
포탄 세례를 피하기 위해 참호는 땅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포격을 피하기 위한 대피호 깊이가 10m, 20m나 되었다. 이곳은 포격에서 안전했지만 간혹 입구가 붕괴되면 흙 속에 매몰되어 병사들이 단체로 매장되기도 했다. 참호의 가장 큰 적은 비였다. 병사들의 숙소, 식당, 모든 것이 참호 속에 갖춰져 있는데 비가 오면 참호에 물이 고인다. 배설물, 쓰레기 등 참호 바닥에 고여 있던 온갖 것들이 물과 함께 배어 나왔다.
비가 갠다고 참호가 맑아지지는 않았다. 바닥은 진창으로 변했고, 병사들의 삶은 진흙 속의 삶이었다. 트렌치코트는 오늘날 사용하는 군용 우비와 달리 진짜 일상의 코트처럼 생겼다. 군용 우비를 저렇게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실용보다 패션을 따지는 낭만이 살아 있던 시대여서 그랬던 것일까? 솔직히 필자는 정답을 모른다. 다만 맑은 날에도 참호는 진흙바닥이었기에 우기에는 맑은 날에도 병사들은 물과 진흙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사정이 일상복 형태의 방수복을 채택했다고 짐작해 본다.
현대의 군사장비와 기술은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1차 대전의 참호전에 투입하면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좀 더 가볍고 방수성과 투습성이 좋다고 해도 진흙으로 뭉친 물 밭에서 잠들어야 하는 병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비가 좋아진다고 군인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군대는 피와 땀과 강인한 정신, 그들의 고통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감사가 있어야만 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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