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던지고, 치고, 달리는 종목이다. 하나라도 특출하면 프로가 될 수 있다. 잘 던지면 투수, 잘 치고 달린다면 야수를 하면 된다. 그런데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기는 어렵다. 그냥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죽기 살기로 한쪽에만 집중해도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 오타니 쇼헤이(27)는 그래서 특별하다. ‘투수’ 오타니는 시속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진다. 일본 시절엔 최고 165km까지 던진 적이 있다. 포크볼이 어지간한 한국 투수들의 패스트볼과 비슷한 140km를 넘는다. 올해 13차례 선발 등판해 4승 1패, 평균자책점 3.49를 기록했다. 그렇게 투수 부문 올스타에 뽑혔다.
‘타자’ 오타니는 150m짜리 타구를 날릴 수 있는 거포다. 전반기에만 33개의 홈런을 뿜어내며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발도 빨라 도루도 12개나 기록했다. 지명 타자 부문 올스타는 그의 차지였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투수와 타자에서 동시에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오타니가 처음이다.
메이저리그는 요즘 온통 ‘오타니 열풍’이다. 일본에서 이도류(二刀流), 미국에서는 투 웨이(two-way)로 불리는 오타니는 수십 년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스타일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를 얘기할 때면 투수와 타자 양쪽에서 큰 재능을 보였던 714홈런의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1895∼1948)가 종종 소환된다.
비현실적인 야구 선수 오타니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안티’가 없다. 스즈키 이치로(전 마이애미)처럼 선수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종종 구설에 휘말리곤 했던 여느 일본인 선수들과도 확연히 다르다. 듬직한 체력과 훈훈한 외모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은 그의 인성이다. 오타니는 팬과 야구, 그리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남다르다.
오타니는 쓰레기를 줍는 몇 안 되는 선수다. 그라운드를 오가다가 오물이라도 발견하면 가던 길을 되돌아와 줍는다. 상대 타자의 부러진 방망이를 배트 보이에게 전달하는 모습도 익숙하다. 팬들에게도 친절하다. ‘공공의 적’이 될 때도 있는 심판들과도 잘 지낸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의 이물질 사용이 문제가 되면서 심판들이 수시로 검사를 한다. 몇몇 투수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오타니는 심판들을 향해 환한 웃음을 보였다. 4월 27일 텍사스와의 경기에서 양현종(33)을 상대로 번트 안타를 기록한 뒤에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가 훌륭한 투구를 하고 있었기에 허를 찌르는 안타가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오타니의 이 같은 태도는 어릴 때부터 형성됐다. 고교 시절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한 목표를 적은 노트에 그는 ‘쓰레기 줍기’ ‘인사 잘하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책 읽기’ ‘긍정적으로 사고하기’ 같은 문구를 빼곡히 적어 넣었다.
아마추어일 때나 야구의 새 역사를 쓰는 스타가 된 지금이나 오타니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 실력과 인성의 ‘이도류’를 가진 오타니의 시대를 오래 즐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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