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기자의 일편車심]시속 제한에도 ‘고성능차’를 만드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6일 03시 00분


김도형 기자
김도형 기자
자동차는 교통수단이다. 편리한 이동의 도구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차를 전혀 다른 목적에 쓴다. 굉음을 내면서 경주용 트랙을 도는 차를 떠올려 보자. 이 차의 운전자는 연료통을 다 비우고도 어딘가로 이동하지 않는다. 이런 차는 운전하는 일 자체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을 위한 기계다.

이런 차들에는 M, N, R, AMG 같은 글자가 붙기도 한다. BMW, 현대차,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와 나란히 대응되는 알파벳들. 이들 브랜드가 자신들의 고성능차에 심어놓은 일종의 표시다.

재미를 주는 운전이나 모터스포츠를 위한 고성능차는 일반 차량과 겉모습이 비슷해도 전혀 다른 차다. 성능을 높인 엔진으로 차가 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출발점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제동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고속에서도 매끄럽게 코너를 돌 수 있는 조향 성능과 장시간 거친 운전을 버틸 수 있는 차량 뼈대 설계도 필요하다.

이런 차들은 운전자의 몸을 좌석으로 밀어붙이는 가속력, 격한 코너링 성능, 온몸을 두드리는 진동과 엔진 소리로 운전자를 자극한다. 만화에서처럼, 버튼을 누르면 짧은 시간 동안 더 폭발적인 가속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차도 있다.

고성능차에는 자동차 기업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극한적인 여건에서도 운전자의 계산을 벗어나지 않는 차를 만드는 것이 오랫동안 자동차 기업의 핵심적인 연구개발 과제였다. 모터스포츠의 뿌리가 깊은 유럽에서는 ‘일요일 경주에서 우승하고 월요일에 차를 팔아라(Win on Sunday, Sell on Monday)’는 말이 유명하다. 차의 품질은 경주에서 증명하라는 얘기다.

한국 도로를 달리는 고성능차 앞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가격 비싼 고성능차의 넘쳐나는 성능을 어디에서 뿜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다. 유럽에는 일부 구간에서 속도 제한을 없앤 고속도로가 있지만 국내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110km가 고작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경기 용인과 강원 인제, 전남 영암 등에 자리 잡은 경주용 트랙이 고성능차 성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한정된 장소다.

그래도 자동차 기업들은 고성능차 개발 여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운전에서 재미와 스릴을 찾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 그리고 일반 차량의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주행 성능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고성능차 개발이 꼭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고성능차 브랜드로 N을 내세운 현대차는 14일 아반떼N을 공개했다. 이미 여러 종류의 N 모델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준중형 고성능차를 내놨다는 게 꽤 상징적이다. 이 차가 내건 ‘일상의 스포츠카’라는 구호에서 차를 이동수단 그 이상으로 대하는 사람이 국내에서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읽힌다.

#고성능차#시속 제한#자동차 기업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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