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 배려심[이준식의 한시 한 수]<117>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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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진 더위 힘들어해도 나는 긴 여름날이 좋기만 하네.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와 전각엔 시원한 바람 산들거리지.

한번 거처를 옮기고 나면 오래도록 남들의 고락은 잊어버리기 마련.

바라노니 이런 베풂 골고루 펼쳐져 그 혜택 온 세상에 나누어지길.

(人皆苦炎熱, 我愛夏日長. 薰風自南來, 殿閣生微凉. 一爲居所移, 苦樂永相忘. 願言均此施, 淸陰分四方.)

- ‘유공권의 시구에 장난삼아 덧붙이다’(희족유공권연구·戱足柳公權聯句)·소식(蘇軾·1037~1101)

인개고염열, 아애하일장. 훈풍자남래, 전각생미량. 일위거소이, 고락영상망. 원언균

차시, 청음분사방.

이 시는 3인 합작으로 알려져 있다. 당 문종(文宗)이 앞 2구를 짓고 나서 수행한 신하들에게 이에 어울리는 2구를 덧붙여 시를 완성하라 했다. 신하들이 앞 다투어 올린 시구 중에서 황제는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와 전각엔 시원한 바람 산들거리지’라는 유공권의 시구를 골랐다. 무더위 탓에 다들 싫어하는 여름을 황제가 굳이 좋아라 하자 시원한 미풍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맞장구를 쳤으니 황제로서는 기분 좋은 산책길이 되었을 것이다. 한여름 궁궐 안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한 소품쯤으로 읽으면 그만이다.

후일 소동파로 알려진 소식이 이 시에 한마디 거들었다. 유공권이 문종과 함께 완성한 시는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 교훈적 메시지가 담기지 않아 아쉽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마지막 4구를 보충했다. 사람들은 처지나 지위가 달라지면 지난날의 고락(苦樂)을 쉬 망각하거나 남들의 입장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동파는 군신(君臣)이 누리는 시원한 바람, 그 혜택을 온 세상 모두가 공유했으면 하는 희망을 설파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자는 목민관으로서의 배려심이라 하겠다. 한편 동파의 이 4구가 군더더기라는 비판도 있다. 동파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억지로 덧붙인 탓에 원시(原詩)의 한적한 맛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유공권의 시구#소동파#4구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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