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로 취임 6개월을 맞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1월 취임식 날 세계를 향해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반년 동안 그가 보인 외교 행보는 “노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같다”는 평가가 외교가에서 나온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거칠게 공격하면서도 일방주의 외교로 동맹관계를 훼손하는 ‘마이웨이’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 우방국을 규합해 중국을 전방위에서 체계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와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민들이 외교 정책의 경제적 성과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전까지 ‘세계의 대통령’ 노릇을 하는 동안 정작 자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지 못했다는 불만이 폭발해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동맹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그 대가로 미국 경제를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로 동맹국에 비용을 요구하며 팔을 비튼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국들은 미국에 대한 투자를 거부하기 더욱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련하게 세계 질서의 ‘새판’을 짜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에 맞서 한국 국익을 지키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한미일 공조가 중국 견제 핵심 축
바이든 행정부가 6개월 동안 숨 가쁘게 펼친 외교 행보에 대해 19일 한 외교 당국자는 “잘 짜인 각본 같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 압박은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와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현재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지난해 경선 과정에서 바이든이 내비쳤던 구상과 비교해도 훨씬 강경한 수준”이라면서 “힘에 기반한 대중국 정책, 전(全) 정부적 접근, 체제 경쟁 등을 내걸고 있고 이는 (내용 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흡사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 압박에 동맹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 바이든 외교팀의 순방 일정에서 이 같은 전략이 잘 드러난다. ‘바이든의 분신’이라 불리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3월 첫 순방지로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택했다. 한미일 3자 협력을 중국 견제의 핵심 축으로 삼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셈이다.
블링컨 장관 방한 때 나온 한미 2+2(외교·국방)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겨냥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가 언급됐다. 미일 2+2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직접 거론하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홍콩 및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 우려를 포함시켰다. 미국은 이후 양자, 다자회의 계기에 비슷한 메시지를 동맹국들에 발신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한일 두 나라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곧장 알래스카로 날아가 중국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회담했다. 외교 당국자는 “미국의 동맹이면서 중국의 이웃인 일본, 한국을 찍고 중국과 맞붙은 일정 자체가 바이든 행정부의 자신감을 보여준다”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태도를 전 세계에 각인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고 말했다.
○ 국제사회 리더십 회복으로 중국 압박
한미일 3각 협력을 재가동시킨 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날아간 곳은 대서양 동맹인 유럽이었다.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를 이끄는 일에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G7 정상들은 이 회의에서 중국의 경제영토 확대 구상인 ‘일대일로’에 맞서는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을 출범하기로 했다. 신장위구르, 홍콩 인권 및 남중국해 정책을 비판하는 공동성명도 채택했다. 로이터 등 외신은 이 공동성명이 “미국이 요구했던 대중국 강경 입장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G7에서 중국의 경제 장악과 인권 유린을 비판한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의 군사력 확장을 견제했다. 유럽과 북미 30개국의 군사동맹체인 나토는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동맹으로서 함께 해결해야 할 도전(challenge)”으로 규정했다.
공동성명에는 “협력적 안보와 규칙에 따른 국제질서를 증진하기 위해 우리의 오랜 아태지역 동반자인 호주, 일본, 뉴질랜드, 한국과 정치적 대화와 실질적 협력을 증진하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나토가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군사 연대를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나토가 내년엔 동아시아까지 협력 외연을 넓힐 수 있다. 한국에도 (참여) 압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자국 경제 우선 외교
바이든 행정부가 6개월 동안 보여준 외교 정책의 중심에는 미국 중산층이 있다. 민주당은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클린턴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 수석고문이었던 제이크 설리번 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패배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설리번 보좌관은 지명 소감 발표에서 “국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국제 안보 문제와 함께 국내의 불평등과 혼란을 백악관 테이블에 동시에 올려놔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이 ‘세계의 대통령’ 노릇을 하는 동안 미국 중산층의 분노가 극에 달해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산층이 국가 성공의 과실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국제 경제 규칙이 미국에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의 공급망 위협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다.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분야 기업들이 미국에 40조 원이 넘는 투자 보따리를 푼 것도 이 맥락이다. 미국으로서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얻고 중산층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양국이 ‘미국-한국의 파트너십’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팩트시트에는 반도체, 인공지능, 6세대(6G) 이동통신 분야 기술협력 등이 전례 없이 자세하게 언급됐다.
○ 미중 사이 ‘끼인’ 한국, 고민 깊어져
한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을 대하는 독일의 태도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군 기지가 있고, 중국에 경제 의존도가 높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G7 등 다자회의 계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는 중국 견제 메시지에는 동참하지만 자동차, 화학 등 독일 핵심 기업들의 중국 현지 투자는 늘리고 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인권과 보건 등 핵심 가치에 대해서는 중국에 할 말은 하고, 경제는 철저히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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